저마다의 직분에서 ‘잘 한다’는 것은 제 역할에 충실할 때를 말합니다. 의사가 잘 한다는 것은 사람을 잘 고친다는 의미입니다. 그 의사가 아무리 높은 직위를 맡고 있고 아무리 많은 박사학위를 가졌다 하더라도 정작 사람을 고치지 않는다면 그는 ‘의사로서’ 잘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행정가나 정치가로서 일을 잘 하고 있는 것이겠지요.
선생님이 잘 한다는 것은 아이들을 잘 가르친다는 의미입니다. 단순히 지식을 쑤셔박는 것이 아닌 선생님으로서의 본분을 다해서 아이들을 선도한다는 의미이지요. 그저 시험이나 잘 보게 하고,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게 만드는 것이 선생의 본질적인 직분이 될 수는 없습니다. (물론 오늘날에는 ‘선생’이라는 단어 자체의 의미가 변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저는 낡은 생각을 지니고 있는지도 모르지요.)
사제가 잘 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여기서 많은 생각들이 나뉘는 것 같습니다. 사제는 과연 무엇하는 사람일까요? 성사 집행자? 교회 행정 감독관? 재정 관리자? 도대체 ‘사제’라는 직분은 무엇을 위한 것일까요?
저는 ‘개인적으로’ 이렇게 생각합니다. 사제는 하느님을 사람들에게 잘 전하고, 사람들을 하느님께로 이끄는 직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 목적을 잘 담고 있는 ‘미사와 성사들’을 거행하는 사람이지요. 그리고 그 밖의 일들도 본연의 목적을 위해서 필요하다면 기꺼이 해 내는 것입니다. 사제는 하느님을 잘 전하는데 도움이 되는 교회를 보살피기 위해서 교회의 여러 행정 직분도 보살펴야 하고, 나아가 교회의 재정도 올바르게 관리해야 하는 것이고 필요하다면 그 밖의 일도 기꺼이 해내어야 하는 것입니다.
정형화된 모범적인 사제상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사제는 그 마음 속에 하느님을 품고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어야 하는 존재입니다. 그래서인지 어려워보이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뭐가 뚜렷이 정해진 직분이라면 그것만 최선을 다하면 될 것인데 사제는 여러가지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다가가야 하고 사람들은 저마다의 관점으로 사제를 바라보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핵심은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사제의 모든 다양한 모습은 오로지 ‘하느님’으로 방향지워져야 하고 역으로 그 하느님을 사람들에게 전하는 데에 도움을 주는 모습이어야 합니다. 물론 반대의 이야기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무리 모범적인 위치에서 있는 듯한 사제라도 ‘하느님’이 없으면 그는 울리는 꽹과리에 불과합니다.
선생님이 잘 한다는 것은 아이들을 잘 가르친다는 의미입니다. 단순히 지식을 쑤셔박는 것이 아닌 선생님으로서의 본분을 다해서 아이들을 선도한다는 의미이지요. 그저 시험이나 잘 보게 하고,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게 만드는 것이 선생의 본질적인 직분이 될 수는 없습니다. (물론 오늘날에는 ‘선생’이라는 단어 자체의 의미가 변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저는 낡은 생각을 지니고 있는지도 모르지요.)
사제가 잘 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여기서 많은 생각들이 나뉘는 것 같습니다. 사제는 과연 무엇하는 사람일까요? 성사 집행자? 교회 행정 감독관? 재정 관리자? 도대체 ‘사제’라는 직분은 무엇을 위한 것일까요?
저는 ‘개인적으로’ 이렇게 생각합니다. 사제는 하느님을 사람들에게 잘 전하고, 사람들을 하느님께로 이끄는 직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 목적을 잘 담고 있는 ‘미사와 성사들’을 거행하는 사람이지요. 그리고 그 밖의 일들도 본연의 목적을 위해서 필요하다면 기꺼이 해 내는 것입니다. 사제는 하느님을 잘 전하는데 도움이 되는 교회를 보살피기 위해서 교회의 여러 행정 직분도 보살펴야 하고, 나아가 교회의 재정도 올바르게 관리해야 하는 것이고 필요하다면 그 밖의 일도 기꺼이 해내어야 하는 것입니다.
정형화된 모범적인 사제상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사제는 그 마음 속에 하느님을 품고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어야 하는 존재입니다. 그래서인지 어려워보이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뭐가 뚜렷이 정해진 직분이라면 그것만 최선을 다하면 될 것인데 사제는 여러가지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다가가야 하고 사람들은 저마다의 관점으로 사제를 바라보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핵심은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사제의 모든 다양한 모습은 오로지 ‘하느님’으로 방향지워져야 하고 역으로 그 하느님을 사람들에게 전하는 데에 도움을 주는 모습이어야 합니다. 물론 반대의 이야기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무리 모범적인 위치에서 있는 듯한 사제라도 ‘하느님’이 없으면 그는 울리는 꽹과리에 불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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