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탓하는 것만큼 쉬운 일은 없습니다. 그런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나만 아니면 된다’는 것이지요. 예수님의 제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수난 전날 저녁에 제자들은 모여서 만찬을 하는데 예수님이 슬프고도 엄숙한 표정으로 일어날 일, 즉 제자의 배신에 대해서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자 모두가 똑같이 하는 소리가 있습니다. ‘저는 아니겠지요?’
그들은 자신들이 아니길 바랬습니다. 그런 나쁜 짓을 하게 될 인물이 자신만은 아니길 바랬지요. 그러나 그 뿐이었습니다. 자신만 아니면 되고 나머지는 어떻게 되든 상관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죄악에 두려웠지만 스승님에 대해서 진정으로 걱정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결국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 것입니다.
나만 아니면 누가 죽어도 상관이 없는 세상, 내가 소유한 범위의 것이 아니면 다른 것이야 어떤 일이 벌어져도 상관이 없는 세상. 그래서 무슨 일이 일어나면 나 이외의 것에 탓을 돌리는 세상이 되어 버린 것이지요. 그렇게 우리는 ‘나’와 ‘주변’을 분리시키기 시작한 셈입니다.
제가 아닐 수가 없습니다. 바로 우리이고 바로 저입니다.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고 한 형제의 망함은 바로 저의 탓이기도 한 것이지요. 우리가 하느님께로부터 받아 내려는 은총의 보상은 사실 이미 주어져 있는 것들입니다. 남은 건 열심히 일하는 것 뿐이지요. 남은 건 열심히 사랑하는 것 뿐입니다. 그 뿐입니다. 당신은 아니라구요? 크게 죄를 짓지 않았다구요? 그래서 누군가를 해친 적이 없다구요? 천만에요. 그래서 바로 당신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아니길 바랬습니다. 그런 나쁜 짓을 하게 될 인물이 자신만은 아니길 바랬지요. 그러나 그 뿐이었습니다. 자신만 아니면 되고 나머지는 어떻게 되든 상관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죄악에 두려웠지만 스승님에 대해서 진정으로 걱정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결국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 것입니다.
나만 아니면 누가 죽어도 상관이 없는 세상, 내가 소유한 범위의 것이 아니면 다른 것이야 어떤 일이 벌어져도 상관이 없는 세상. 그래서 무슨 일이 일어나면 나 이외의 것에 탓을 돌리는 세상이 되어 버린 것이지요. 그렇게 우리는 ‘나’와 ‘주변’을 분리시키기 시작한 셈입니다.
제가 아닐 수가 없습니다. 바로 우리이고 바로 저입니다.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고 한 형제의 망함은 바로 저의 탓이기도 한 것이지요. 우리가 하느님께로부터 받아 내려는 은총의 보상은 사실 이미 주어져 있는 것들입니다. 남은 건 열심히 일하는 것 뿐이지요. 남은 건 열심히 사랑하는 것 뿐입니다. 그 뿐입니다. 당신은 아니라구요? 크게 죄를 짓지 않았다구요? 그래서 누군가를 해친 적이 없다구요? 천만에요. 그래서 바로 당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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