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아버지와 일본을 여행하다가 길가에서 이상한 나무를 하나 만났습니다. 나무가 아직 많이 어릴 때에 둘레에 쇠로 울타리를 쳐 놓은 모양이었습니다. 나무가 점점 자라면서 그 쇠 울타리를 향해서 가지를 뻗다가 울타리가 있으니 그것을 차마 밀어내지 못하고 그 울타리 주변으로 단단하게 뭉쳐 있었습니다.
아이의 성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이가 본래의 모습대로 자라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아이를 억누르거나 윽박지르거나 부모의 요구를 강요하기 시작하면 아이는 ‘비틀어지기’ 시작합니다.
특히 목소리가 크고 철이 없는 부모는 마치 자신들이 원하는 것이 아이가 원하는 것인양 착각을 하고 아이에게 자신들이 생각하는 것을 ‘강제적으로 주입’하기 시작합니다. 이런 저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치지만 대부분 ‘돈을 잘 버는 것’에 집중해 있고 정작 아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무지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러면서 또 그것을 찾는다고 무리하게 어린 아이에게 이런 저런 취미 생활을 시키기도 합니다. 하지만 솔직히 아이가 원하는 것을 찾아주기 위함이 아니라 이웃집 아이들이 모두 하기에 거기에 꿀리지 않기 위해서 하는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즉 부모, 특히 어머니의 탐욕인 셈이지요. 왜냐하면 대부분의 경우에 아버지는 일을 하느라 아이를 만날 기회조차도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결국 아이는 자신이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는지 전혀 알지 못한 채로 부모의 경제력에 따른 부산물이 되고 말지요. 집에 돈이 많은 아이는 좋은 학군에 좋은 지원을 바탕으로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그렇지 못한 아이는 그저 그런 대학에 들어가 결국 사회 안에서 자신의 수준에서 허락된 곳에 안착하게 됩니다.
아이가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지식이나 기술이 아닙니다. 아이가 필요한 것은 따스한 사랑과 애정입니다. 아이들은 사랑을 먹고 자랍니다. 분재는 아름답지만 가공된 아름다움입니다. 마음껏 자라날 수 있는 나무를 온갖 철사로 꽁꽁 묶어서 제가 원하는 모양새로 만들 수는 있겠지만 그 모양새가 과연 하느님께서 원하시던 모습일지는 잘 성찰하셔야 합니다.
아이의 성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이가 본래의 모습대로 자라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아이를 억누르거나 윽박지르거나 부모의 요구를 강요하기 시작하면 아이는 ‘비틀어지기’ 시작합니다.
특히 목소리가 크고 철이 없는 부모는 마치 자신들이 원하는 것이 아이가 원하는 것인양 착각을 하고 아이에게 자신들이 생각하는 것을 ‘강제적으로 주입’하기 시작합니다. 이런 저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치지만 대부분 ‘돈을 잘 버는 것’에 집중해 있고 정작 아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무지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러면서 또 그것을 찾는다고 무리하게 어린 아이에게 이런 저런 취미 생활을 시키기도 합니다. 하지만 솔직히 아이가 원하는 것을 찾아주기 위함이 아니라 이웃집 아이들이 모두 하기에 거기에 꿀리지 않기 위해서 하는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즉 부모, 특히 어머니의 탐욕인 셈이지요. 왜냐하면 대부분의 경우에 아버지는 일을 하느라 아이를 만날 기회조차도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결국 아이는 자신이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는지 전혀 알지 못한 채로 부모의 경제력에 따른 부산물이 되고 말지요. 집에 돈이 많은 아이는 좋은 학군에 좋은 지원을 바탕으로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그렇지 못한 아이는 그저 그런 대학에 들어가 결국 사회 안에서 자신의 수준에서 허락된 곳에 안착하게 됩니다.
아이가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지식이나 기술이 아닙니다. 아이가 필요한 것은 따스한 사랑과 애정입니다. 아이들은 사랑을 먹고 자랍니다. 분재는 아름답지만 가공된 아름다움입니다. 마음껏 자라날 수 있는 나무를 온갖 철사로 꽁꽁 묶어서 제가 원하는 모양새로 만들 수는 있겠지만 그 모양새가 과연 하느님께서 원하시던 모습일지는 잘 성찰하셔야 합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