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지 않은 신앙인들이 신앙생활을 하는 이유 중에 중요하게 꼽는 것입니다. 사실 마음이 평화로워지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이것을 이루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혀 엉뚱한 방법으로 이것을 이루려고 합니다.
예를 들어 봅시다. 옆에 우는 아이가 있습니다. 그러면 그 아이의 울음과 모습이 내 감각 기관을 타고 흘러들어와 나를 성가시게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마음이 편치 못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할까요? 여기에서 적지 않은 이들이 쓰는 방법은 ‘회피’입니다. 즉, 아이가 없는 곳을 찾아 떠나는 것이지요. 그러면 나의 눈과 귀에서 아이의 성가심이 사라져 버리니까요. 그렇게 도망을 치고서는 자신의 마음이 ‘평화’롭다고 착각을 합니다.
다음으로는 아이가 울지 못하도록 겁을 주고 윽박지르는 방법도 있습니다. 이 또한 일종의 회피이지만 나의 노력이 들어가는 부분이라 사람들은 이를 ‘개선’이라고 착각을 합니다. 아이가 겁을 집어먹도록 온통 짓누르고 나서는 아이가 조용해지면 평화가 찾아왔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이는 다른 기회에 이번에 울지 못한 것까지 더해서 더욱 극심하게 울어버릴 것입니다.
참된 평화를 얻고자 한다면 먼저 인내심을 갖고 아이에게 다가가 아이가 왜 우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아이가 울고 있는 이유를 해소해 주어야 합니다. 배가 고프면 밥을 먹이고, 뭔가가 필요하면 그것을 가서 구해다가 가져다 주어야 합니다. 결국 그렇게 아이는 행복해 하며 울음을 그치게 됩니다. 이 방법은 더디고 힘이 드는 방법입니다. 하지만 이 방법이야말로 진정한 평화를 추구하는 방법입니다.
사람들은 쉬운 길을 선택하는 데에 굉장히 익숙합니다.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해서는 평화를 누릴 자격을 갖춘 마음을 지녀야 합니다. 하지만 이런 저런 처세술로 자신의 마음에 평화가 깃드리라고 착각하는 신앙인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들은 신앙적인 무언가를 많이 하면 평화가 주어지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기도에 매달리고, 평일 미사에 나오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우는 아이를 사랑하고 달래어야 하는데 그건 하기 싫고 다른 조금은 나은 방법을 찾는 셈이지요.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습니다. 마음의 평화는 ‘평화를 누릴 수 있는 자격을 갖춘 마음’에 찾아오는 것입니다. 결코 평화가 무슨 택배처럼 배달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지요. 평화를 추구한다면 나를 바꾸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봅시다. 옆에 우는 아이가 있습니다. 그러면 그 아이의 울음과 모습이 내 감각 기관을 타고 흘러들어와 나를 성가시게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마음이 편치 못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할까요? 여기에서 적지 않은 이들이 쓰는 방법은 ‘회피’입니다. 즉, 아이가 없는 곳을 찾아 떠나는 것이지요. 그러면 나의 눈과 귀에서 아이의 성가심이 사라져 버리니까요. 그렇게 도망을 치고서는 자신의 마음이 ‘평화’롭다고 착각을 합니다.
다음으로는 아이가 울지 못하도록 겁을 주고 윽박지르는 방법도 있습니다. 이 또한 일종의 회피이지만 나의 노력이 들어가는 부분이라 사람들은 이를 ‘개선’이라고 착각을 합니다. 아이가 겁을 집어먹도록 온통 짓누르고 나서는 아이가 조용해지면 평화가 찾아왔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이는 다른 기회에 이번에 울지 못한 것까지 더해서 더욱 극심하게 울어버릴 것입니다.
참된 평화를 얻고자 한다면 먼저 인내심을 갖고 아이에게 다가가 아이가 왜 우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아이가 울고 있는 이유를 해소해 주어야 합니다. 배가 고프면 밥을 먹이고, 뭔가가 필요하면 그것을 가서 구해다가 가져다 주어야 합니다. 결국 그렇게 아이는 행복해 하며 울음을 그치게 됩니다. 이 방법은 더디고 힘이 드는 방법입니다. 하지만 이 방법이야말로 진정한 평화를 추구하는 방법입니다.
사람들은 쉬운 길을 선택하는 데에 굉장히 익숙합니다.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해서는 평화를 누릴 자격을 갖춘 마음을 지녀야 합니다. 하지만 이런 저런 처세술로 자신의 마음에 평화가 깃드리라고 착각하는 신앙인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들은 신앙적인 무언가를 많이 하면 평화가 주어지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기도에 매달리고, 평일 미사에 나오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우는 아이를 사랑하고 달래어야 하는데 그건 하기 싫고 다른 조금은 나은 방법을 찾는 셈이지요.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습니다. 마음의 평화는 ‘평화를 누릴 수 있는 자격을 갖춘 마음’에 찾아오는 것입니다. 결코 평화가 무슨 택배처럼 배달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지요. 평화를 추구한다면 나를 바꾸어야 하는 것입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