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에게 역정을 내는 사람은 자신이 화가 나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평화를 간직한 사람은 혼자 독방에 내버려두어도 평화 중에 그 고독을 만끽합니다.
자신이 가진 것을 꺼내게 마련입니다. 자신 안에 가득 들어찬 것이 우리의 행동과 입을 통해서 쏟아져 나오게 됩니다. 스스로 행복하지 않으면 결코 남을 행복하게 할 수 없는 것은 진리입니다. 행복하게 하려는 시늉은 할 수 있겠지만 그것으로 행복이 전해지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행복은 ‘사랑’ 안에서만 진실되이 전해질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지 않는 이들은 ‘행복’의 진정한 가치에 대해서 알지 못합니다. 술자리에서 만난 이들이 저마다의 재미난 이야기로 발작적인 웃음을 웃지만 술자리를 마치고 나면 공허해지는 이유는 거기에 있습니다. 사랑이 없는 모임이고 자기 자랑만 실컷 하고 남 욕만 실컷하는 자리는 순간 순간의 재치로 즐거워 보이지만 실제로는 공허한 자리가 되고 마는 것이지요. 아니, 오히려 이야기하는 순간에 더 화가 날 수도 있습니다. 자신이 추앙받아야 하는 자리를 누군가가 리드해 버리면 도리어 화가 나는 것이지요.
사실 우리는 주변 사람들의 모습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누구는 늘 부정적이라서 만나기 싫고, 또 다른 누구는 푸근해서 다시 만나고 싶지요. 세상 사람들도 이미 저마다 판단 기준으로 사람의 인간성을 파악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느님을 알지 못하면 그분의 사랑에 대해서 이해도가 떨어지게 되고 결국 그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됩니다. 우리는 모르는 대상에 대해서는 눈 앞에 그것을 두고 있어도 지나치게 마련입니다. 어느 아이가 호텔에 들어가서 수십억원짜리 그림을 눈 앞에 두고 있어도 로비 위에 있는 사탕이 더 중요해 보이는 것과 비슷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에 대해서 인지하지 못하고 있으며 따라서 그분을 얻지 못하고 지나치고 맙니다. 다른 한 편 눈 앞의 사탕에 대해서는 온 마음을 다해서 그것을 거머쥐려고 하지요.
언제까지 이러해야 하는지… 그것은 그의 선택에 달린 문제입니다. 아무리 빛을 비추어도 도망가 버리기만 하는 어둠을 사랑하는 곤충이 있는가 하면 빛을 찾아서 내달리는 곤충도 있습니다. 과연 내면의 그 스위치는 바뀔 수 있을까요? 제가 아는 바로는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에 그 스위치의 주인은 바로 우리 자신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그 스위치를 다른 누군가가 작동시킬 수 있는 거라면 우리는 ‘로봇’에 불과하지요. 하지만 우리는 자유인이며 우리의 선택은 우리의 몫입니다.
자신이 가진 것을 꺼내게 마련입니다. 자신 안에 가득 들어찬 것이 우리의 행동과 입을 통해서 쏟아져 나오게 됩니다. 스스로 행복하지 않으면 결코 남을 행복하게 할 수 없는 것은 진리입니다. 행복하게 하려는 시늉은 할 수 있겠지만 그것으로 행복이 전해지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행복은 ‘사랑’ 안에서만 진실되이 전해질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지 않는 이들은 ‘행복’의 진정한 가치에 대해서 알지 못합니다. 술자리에서 만난 이들이 저마다의 재미난 이야기로 발작적인 웃음을 웃지만 술자리를 마치고 나면 공허해지는 이유는 거기에 있습니다. 사랑이 없는 모임이고 자기 자랑만 실컷 하고 남 욕만 실컷하는 자리는 순간 순간의 재치로 즐거워 보이지만 실제로는 공허한 자리가 되고 마는 것이지요. 아니, 오히려 이야기하는 순간에 더 화가 날 수도 있습니다. 자신이 추앙받아야 하는 자리를 누군가가 리드해 버리면 도리어 화가 나는 것이지요.
사실 우리는 주변 사람들의 모습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누구는 늘 부정적이라서 만나기 싫고, 또 다른 누구는 푸근해서 다시 만나고 싶지요. 세상 사람들도 이미 저마다 판단 기준으로 사람의 인간성을 파악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느님을 알지 못하면 그분의 사랑에 대해서 이해도가 떨어지게 되고 결국 그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됩니다. 우리는 모르는 대상에 대해서는 눈 앞에 그것을 두고 있어도 지나치게 마련입니다. 어느 아이가 호텔에 들어가서 수십억원짜리 그림을 눈 앞에 두고 있어도 로비 위에 있는 사탕이 더 중요해 보이는 것과 비슷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에 대해서 인지하지 못하고 있으며 따라서 그분을 얻지 못하고 지나치고 맙니다. 다른 한 편 눈 앞의 사탕에 대해서는 온 마음을 다해서 그것을 거머쥐려고 하지요.
언제까지 이러해야 하는지… 그것은 그의 선택에 달린 문제입니다. 아무리 빛을 비추어도 도망가 버리기만 하는 어둠을 사랑하는 곤충이 있는가 하면 빛을 찾아서 내달리는 곤충도 있습니다. 과연 내면의 그 스위치는 바뀔 수 있을까요? 제가 아는 바로는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에 그 스위치의 주인은 바로 우리 자신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그 스위치를 다른 누군가가 작동시킬 수 있는 거라면 우리는 ‘로봇’에 불과하지요. 하지만 우리는 자유인이며 우리의 선택은 우리의 몫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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