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교리교사들은 때로 부모님에게 제제를 받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보다 헌신적인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서 그런 제제를 받기보다 부모님의 걱정을 받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정말 자신이 사랑하는 주일학교 아이들을 위해서 더 시간을 헌신하기 위해서 노력하다가 부모에게서 걱정을 받는 게 아니라는 말이지요. 오히려 보좌 신부님과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거나, 다른 교리교사들과 어울려 노느라 그런 제제를 받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것은 ‘신앙의 시련’이 아닙니다. 그것은 고쳐야 할 악습에 불과합니다.
신앙의 시련이라는 것을 착각하는 이들이 많으니 자신 안에 부덕함이 있는 것을 스스로 자각하지 못한 채로 ‘성당’이름을 달고 다른 누군가가 나를 꺼려하면 무조건 자신이 신앙의 시련을 체험한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집에서 자신의 생활을 올바로 꾸려 나가지도 못하면서 성당이 재밌고 좋아서 나다니다가 그런 시련을 당하는 것은 신앙의 시련이 아닙니다.
신앙의 시련은 내가 이미 나의 악습을 정돈하고 보다 참된 길을 걸어나가려는데 나에게 다가오는 시련을 의미합니다. 사람들의 빈정거림과 조롱, 그리고 박해의 형태로 나타나지요. 어느 주부가 가정에서 모범적인 생활을 하면서 짬을 내어 주일 미사를 나가려는데 그걸 아니꼽게 여기는 시어머니의 박해의 형태와 같은 것이 신앙의 시련입니다. 지극 정성을 다해 병든 부친을 돌보고 행여 불편한 것이 없나 살피는 데도 그 아버지가 자식에게 억지를 부리고 화를 내어 인내를 시험하게 만드는 것과 같은 것이 신앙의 시련입니다.
하지만 지금의 교회 안에서 진정한 의미의 신앙의 시련을 겪는 젊은이들은 참으로 희박합니다. 저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매진하다가 그걸 제지당하니 기분나빠 하는 것일 뿐입니다.
술을 자제하고 보다 참된 신심 활동을 위해서 헌신하시기 바랍니다. 꾸준히 기도하고 하느님을 사랑하려고 노력하는 젊은이들이 되길 바랍니다. 그렇지 않으면 머지 않아 여러분들은 성당에서 가장 마음이 멀어져 있는 젊은 부부가 되어 있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습니다.
신앙의 시련이라는 것을 착각하는 이들이 많으니 자신 안에 부덕함이 있는 것을 스스로 자각하지 못한 채로 ‘성당’이름을 달고 다른 누군가가 나를 꺼려하면 무조건 자신이 신앙의 시련을 체험한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집에서 자신의 생활을 올바로 꾸려 나가지도 못하면서 성당이 재밌고 좋아서 나다니다가 그런 시련을 당하는 것은 신앙의 시련이 아닙니다.
신앙의 시련은 내가 이미 나의 악습을 정돈하고 보다 참된 길을 걸어나가려는데 나에게 다가오는 시련을 의미합니다. 사람들의 빈정거림과 조롱, 그리고 박해의 형태로 나타나지요. 어느 주부가 가정에서 모범적인 생활을 하면서 짬을 내어 주일 미사를 나가려는데 그걸 아니꼽게 여기는 시어머니의 박해의 형태와 같은 것이 신앙의 시련입니다. 지극 정성을 다해 병든 부친을 돌보고 행여 불편한 것이 없나 살피는 데도 그 아버지가 자식에게 억지를 부리고 화를 내어 인내를 시험하게 만드는 것과 같은 것이 신앙의 시련입니다.
하지만 지금의 교회 안에서 진정한 의미의 신앙의 시련을 겪는 젊은이들은 참으로 희박합니다. 저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매진하다가 그걸 제지당하니 기분나빠 하는 것일 뿐입니다.
술을 자제하고 보다 참된 신심 활동을 위해서 헌신하시기 바랍니다. 꾸준히 기도하고 하느님을 사랑하려고 노력하는 젊은이들이 되길 바랍니다. 그렇지 않으면 머지 않아 여러분들은 성당에서 가장 마음이 멀어져 있는 젊은 부부가 되어 있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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