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같이 붙어 있다고 해도 서로 다른 두 주체에 의해 움직여진다면 그것은 한 몸이 아닐 것입니다. 그런 일은 없겠지만 가령 오른손이 음식을 집어 먹으려는데 왼손이 그걸 가로막고 음식을 빼앗는다면 한 몸 속에 두 주체가 있는 셈이지요.
교회는 한 몸입니다. 왜냐하면 같은 신앙을 고백하기 때문입니다. 그 신앙은 ‘예수님이 주님이시다’라는 것입니다. ‘성령에 힘입지 않고서는 아무도 “예수님은 주님이시다.” 할 수 없습니다.’ (1코린 12,3) 따라서 우리는 같은 성령을 지니고 있는 셈이 됩니다. 하지만 이는 ‘말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생각해봅시다. 같은 주님을 고백하면서 사제가 신자들의 영적 필요를 보고도 그들을 사목하기는 커녕 자신의 유익을 챙길 생각만 하고 있다면 그는 입으로는 신앙을 고백하지만 몸으로는 이미 신앙 공동체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이 됩니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같은 주님을 고백하면서 사제의 몇가지 면모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기분 나빠하면서 순명하지 못하고 함께 마음을 모으지 못한다면 그 역시도 한 몸에서 떨어져 나간 지체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이런 일은 다분히 일어나고 있는 중입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이유는 우리가 고백하는 것의 중요성을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저 미사 중에 사도 신경으로 ‘성령을 믿으며’라고 말한다고 우리가 성령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성령에 따라 움직여야 합니다. 그래야 그분의 같은 몸이 되고 그분의 지체가 되는 것입니다. 컴퓨터에 제품 라벨은 모두 같은 윈도우 운영체제인데 누군가가 몰래 와서 한 컴퓨터에 리눅스를 깔아 버리면 전혀 다른 움직임이 시작되는 것이지요. 껍데기는 멀쩡한 아이폰인데 누군가 그 안에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설치해 버리면 그건 더는 아이폰과 같은 작동체계를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랑하라고 했고 서로 일치하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것을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서로 다투기를 좋아하고 분리되기를 좋아합니다. 헌데 우리가 어찌 같은 성령을 받았다고 자부할 수 있겠습니까?
교회는 한 몸입니다. 왜냐하면 같은 신앙을 고백하기 때문입니다. 그 신앙은 ‘예수님이 주님이시다’라는 것입니다. ‘성령에 힘입지 않고서는 아무도 “예수님은 주님이시다.” 할 수 없습니다.’ (1코린 12,3) 따라서 우리는 같은 성령을 지니고 있는 셈이 됩니다. 하지만 이는 ‘말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생각해봅시다. 같은 주님을 고백하면서 사제가 신자들의 영적 필요를 보고도 그들을 사목하기는 커녕 자신의 유익을 챙길 생각만 하고 있다면 그는 입으로는 신앙을 고백하지만 몸으로는 이미 신앙 공동체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이 됩니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같은 주님을 고백하면서 사제의 몇가지 면모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기분 나빠하면서 순명하지 못하고 함께 마음을 모으지 못한다면 그 역시도 한 몸에서 떨어져 나간 지체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이런 일은 다분히 일어나고 있는 중입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이유는 우리가 고백하는 것의 중요성을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저 미사 중에 사도 신경으로 ‘성령을 믿으며’라고 말한다고 우리가 성령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성령에 따라 움직여야 합니다. 그래야 그분의 같은 몸이 되고 그분의 지체가 되는 것입니다. 컴퓨터에 제품 라벨은 모두 같은 윈도우 운영체제인데 누군가가 몰래 와서 한 컴퓨터에 리눅스를 깔아 버리면 전혀 다른 움직임이 시작되는 것이지요. 껍데기는 멀쩡한 아이폰인데 누군가 그 안에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설치해 버리면 그건 더는 아이폰과 같은 작동체계를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랑하라고 했고 서로 일치하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것을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서로 다투기를 좋아하고 분리되기를 좋아합니다. 헌데 우리가 어찌 같은 성령을 받았다고 자부할 수 있겠습니까?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