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할 건 인정해야 하겠지요. 적지 않은 사제들이 좀 친하기 시작하면 신자분들을 함부로 대하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입니다. 특히 표현을 함부로 하기 시작하지요. 물론 친구 사이에도 교우 사이에도 이런 일은 벌어집니다. 하지만 사제에게서 이런 일이 더 자주 벌어지고 또 반복되어 벌어지는 이유는 그 누구도 사제에게 조언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아예 신학생 시절부터 '이 분은 거룩한 사제가 되실 분'이라는 생각으로 마땅히 건네야 할 어르신의 조언도 삼가하기 시작하니 젊은 사제들이 자신들이 도를 넘은 표현도 스스로 캐치를 못하는 것입니다. 친구들은 서로 삐지기도 하고 싸우기도 하는데 사제와 신자간에는 오직 한쪽이 내쏟고 다른 쪽이 참는 관계가 일정기간 유지되다가 결국 신자가 냉담하고 떠나는 일이 벌어지니 결국 누구도 사제에게 합당한 조언을 건네지 못하는 것입니다. 특히나 사제 주변에 모인 중심 세력은 신부님과의 친분을 즐기면서 신부님이 자신을 함부로 대해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기가 일쑤입니다. 그러니 그런 사제는 물론 인격 함양을 하지 못한 자신의 잘못도 있지만 주변 사람들도 그에 상응하는 반작용을 하지 않은 탓도 무시하지 못하는 것이지요. 그러니 본당의 머리 희끗희끗한 어르신들은 본당의 학사님들이나 젊은 신부님들을 존중하시되 도를 넘는 행위를 보시면 마땅히 조언해 주셔야 합니다. 독성죄는 사제를 툭 건드리거나 사제가 들어서 기분이 좋지 않을 말을 한다고 무조건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사제가 본연의 일(미사, 성사, 사목)을 하는데 방해할 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 합당한 조언은 기꺼이 해주셔야 합니다. 젊은 사람은 그렇다치고 나이 드신 분은 어쩌냐구요? 아마 그 정도 나이에도 함양되지 못한 인격이면 상당히 진도가 진척된 것이니 안타깝지만 그 케이스에는 마땅한 도리가 없다는 것이 제 솔직한 의견이기도 합니다. 인내 양성 기회로 삼으세요. 그래도 한국에는 사제 임기가 어느정도 정해져 있으니까요. 그나마 다행입니다.
통상적으로 가톨릭의 성직자(거룩한 직분을 받은 자)를 신부님이라고 부르고 개신교의 목회자(회중을 사목하는 자)를 목사님이라고 부릅니다. 당연히 이를 올바로 구별하기 위해서는 가톨릭(또는 천주교)과 개신교의 차이를 알아야 하겠지요? 기독교라는 말은 ‘그리스도교’의 한자 음역을 한 단어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통상적으로 가톨릭과 개신교를 모두 포함하는 말입니다. 정확하게 표현하기 위해서는 천주교(가톨릭: 보편적)과 개신교(프로테스탄트: 저항)로 표기하는 것이 맞습니다. 먼저는 예수님입니다. 2000여년 전 인류사에서 한 인물이 등장을 했고 엄청난 이슈를 남기게 되었지요. 그리고 그를 추종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생겨나게 됩니다. 소위 ‘믿는 이들의 공동체’인 교회가 생겨나게 된 것이지요. 그리고 이 교회는 역사를 통해서 그 덩치를 키우게 됩니다. 그리고 덩치가 커지니 만큼 순수했던 처음의 열정이 사라져가고 온갖 사람들이 그 안에 들어서게 되지요. 그리고 엉뚱한 움직임들이 많이 등장하게 됩니다. 즉 교회의 본질에서 벗어나는 많은 모습들이 보이게 되었지요. 돈에 대한 탐욕, 권력에 대한 집착과 같은 움직임들입니다. 그리고 자연스레 그에 반발하는 움직임이 등장하게 되지요. 그것이 바로 개신교의 시초인 셈입니다. 루터라는 인물이 95개조의 반박문을 쓰고 했다는 역사적인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그로부터 개신교 형제들이 자기들의 신조를 들고 갈려 나오기 시작 했습니다. 그들은 오직 믿음, 오직 성경, 오직 은총과 같은 구호를 외치면서 가톨릭에서 갈려 나와 자신들이 진정한 초대교회의 정통성을 이어 받았다고 주장하기 시작했지요. 그리고 가톨릭은 여전히 가톨릭대로 자신들이 정통성을 이어가고 있다고 하고 있는 상황이 펼쳐지게 됩니다. 우리의 몸이 때로는 아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몸이 아프다고 해서 성한 팔을 따로 잘라내지는 않는 것처럼 공동체도 마찬가지여야 합니다. 공동체가 아프면 모두 힘을 모아서 그 아픈 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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