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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리비아는 맑음

안녕하세요~ ‘볼리비아는 맑음’의 마진우 신부입니다. 오늘은 저희 프로그램 제목과는 다르게 비가 살짝 내렸는데요. 그래서 그런지 공기가 굉장히 시원하네요. 이런 날이면 늘 생각나는 게 있죠. 짬뽕~ 얼큰한 국물에 해물이 잔뜩 들어간 짬뽕 한 그릇이면 이런 날의 우울함은 가뿐히 날려버릴 것 같은데 말이지요.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첫곡은 황신혜 밴드가 부릅니다. 짬뽕.

자, 잘 들으셨나요? 아주 그로테스크하지만 재밌고 신나는 곡이지요? 오늘은 아침 일찍부터 가슴이 따뜻해지는 일이 있었습니다. 멀리 사는 석상희 신부님이 어제 밤에 와서 곰탕을 끓여놓고 가셨어요. 아, 후배 신부를 사랑하는 그 마음이 그 따뜻한 국물에 그대로 전해지는 것 같지 않나요? 오고가는 음식 속에 정이 싹트게 마련이지요. 그렇습니다. 구수한 곰탕 냄새가 흐르는 진한 정을 느끼려면 이 곡이 일품이지요. 이동원 박인수가 부릅니다. 향수.

아, 언제 들어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곡이에요. 그렇습니다. 지금 바깥으로는 어둠이 내리고 풀벌레 소리가 들리는데 그래서 그런지 더욱 이 곡이 애절하게 와 닿네요. 오늘 저녁에는 총회장 부부가 찾아왔습니다. 본당 꾸려나가는 상황을 이야기를 하면서 잠시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지요. 비록 몸은 쉬지만 마음은 여전히 분주한 느낌이었습니다. 본당 신부라는 게 그렇지요. 걱정이 끊이지를 않는 법입니다. 이렇게 마음이 분주할 때에는 이 곡이 제격이지요. Bobby McFerrin이 부릅니다. Don't Worry Be Happy

아, 이 노래는 제가 개인적으로 참으로 좋아하는 노래예요. 언제 들어도 잔잔하면서도 푸근한 느낌을 가질 수 있지요. 가사 내용도 일품이랍니다. 기회가 되시면 찾아 번역해 보시길 바래요. 오늘 ‘볼리비아는 맑음’ 이정도에서 마치고자 합니다. 여러분들 이런 저런 생각과 걱정이 많으시겠지만 훌훌 날려 버리시고 새로운 하루 즐겁게 시작하시길 바래요. 그럼 다음에 또 뵙지요. 마지막 곡으로 Pharrell Williams의 Happy 들려드리고 저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짬뽕
https://www.youtube.com/watch?v=X9a6c1IQp0o

향수
https://www.youtube.com/watch?v=ms-sCgSSTsQ

Don't Worry Be Happy
https://www.youtube.com/watch?v=d-diB65scQU

happy
https://www.youtube.com/watch?v=y6Sxv-sUY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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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체를 모시는 방법

- 성체를 손으로 모시는 게 신성모독이라는데 사실인가요? 이게 무슨 소린가 싶었습니다. 일단 설명을 시작했습니다. - 교회는 전통적으로 성체를 입으로 직접 받아 모셔왔습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십시오. 주님의 수난 만찬때에 제자들과 모여 함께 나눈 빵을 제자들이 무릎을 꿇고 입만 벌리고 받아 모셨을까요? 아닙니다. 그들은 손으로 빵을 받아서 나누어 옆의 동료들에게 나누어가며 먹었습니다. 하지만 성체에 대한 공경이 날이 갈수록 더해 감에 따라 부스러기 하나라도 흘리지 않으려는 극진한 공경심을 드러내기 위해서 제단 앞으로 나와 무릎을 꿇고 입을 벌리고 받아모시게 한 것이지요. 그러다가 신자들의 수가 너무 많아지고 또 입으로 모시다가 자꾸 사제의 손에 침이 발리니 위생상의 문제도 있고 해서 손으로 받아 모시게 한 것입니다. 사실 한국과 같은 곳은 입으로 받아 모시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거의 전부가 손으로 받아 모십니다. - 그럼 그런 표현을 하는 사람은 왜 그러는 건가요? - 제가 보았을 때에는 성체에 대한 극진한 존경심을 드러내기 위해서 그런 말을 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성체를 공경하고 존경하는 마음을 드러내는 것은 좋지만 손으로 모시는 사람을 잘못되었다고 할 필요는 없지요. 여기서는(볼리비아에서는) 입으로 모시는 사람과 손으로 모시는 사람의 두 부류가 있고 둘 다 존중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입으로 모시는 이들의 혀가 제 손에 자꾸만 닿는 것은 분명히 사실이고 이는 굉장히 비위생적인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입으로 모시는 것이 성체를 흘리고 떨어뜨릴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그래서 손으로 모시는 것이 보다 안정적이지요. 다만 손으로 모실 때에는 미사 전에 손을 깨끗이 씻고 왼손 아래에 오른손을 받치는 올바른 자세를 갖추고 왼손으로 성체를 받아 뒤의 사람이 앞으로 나와 성체를 모실 수 있도록 옆으로 살짝 비켜나서 성체를 모셔야 합니다. 성체를 모시고 나서 손에 남은 부스러기를 함부로 다루지 말고 입으로 가져가서 혓바닥으로 깨끗이 처리할 필요가 있지요

신부님이랑 목사님은 뭐가 달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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