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가기 전에 접수처에 들렀다 가세요.
순진한 마음으로 지금까지의 의료 행위에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의사 선생님을 만나 잠깐 이야기 나눈다는 마음이었지만, 이 이야기를 듣는 순간 바로 느낌이 왔습니다. 그래서 가서 보니 아니나 다를까 상담비를 내라고 합니다. 그래서 얼마냐고 하니까 200Bs.라고 합니다. 더 재미난 건 제가 농담처럼 함께 있던 자매에게 제가 이런 말을 건넸을 때입니다.
- 그렇게 잠깐 만나고도 200Bs.나 받네요.
- 신부님 그런 말 마세요. 저 의사 선생님 원래 상담하면 상담비가 100달러(700Bs.)에요.
- 네에? 정말요?
- 네, 정말이에요. 그래서 신부님 입원해 있는 동안 매일 찾아와서 잠깐 이야기하고 그 비용을 다 받은 거에요.
- 와, 만일에 제가 본당에서 그렇게 하면 아무도 찾아오지 않겠지요?
아닌게 아니라 사실입니다. 제가 누군가와 아주 잠깐 이야기하는 비용으로 200Bs.를 청한다면 도대체 누가 신부를 만나러 성당에 나오겠습니까? 신앙 상담도 공짜이요 고해성사도 공짜이요 주일미사는 동전 몇 푼만 봉헌금으로 준비하면 그만이니 볼리비아 사람들이 평소에 지불해야 하는 비용에 비하면 얼마나 싸고 좋은 서비스인지 모릅니다.
의사들은 선서를 합니다. 히포크라테스 선서라고 하지요. 그 선서문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나는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하겠노라.”
하지만 과연 이 선서를 신중하게 생각하는 의사가 얼마나 될까요? 그들은 가난한 이들이 아예 근처에도 못오게 막아 놓은 성채 안에 살고 있으니 말입니다. 제가 모아둔 월급으로 비싼 병원에서 치료를 감행한 것과는 달리 가난한 이들은 아프면 죽기를 기다리는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는 동안 의사들은 있는 자들, 가진 자들을 성심껏 진료하고 그에 상응하는 엄청난 비용을 받아가지요. 그러니 누가 하느님을 제쳐 두고서라도 돈을 벌려고 하지 않겠습니까?
사실 제가 어릴 때에도 ‘의사’라는 직분을 떠올리면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소중함이라는 느낌보다는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직업’이라는 느낌이 더 강했고 자녀들을 의사로 만들려는 부모님에게서 그 자녀들이 정말 생명을 살리는 직분을 가지기를 바라는 마음보다도 사회적으로 떵떵거리는 직업으로 출세시키겠다는 마음을 지닌 이들을 더 많이 본 것 같습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제가 머무르고 있는 볼리비아의 엄연한 현실의 한 단편입니다. 돈 없으면 죽어야 하는게 이곳입니다. 의사들에게도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생겨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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