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진 유리로는 상을 비추어보기가 힘이 듭니다. 거울 조각을 다시 붙이던가 조치를 취하고서야 그래도 희미하게나마 무언가를 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도 깨어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회복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이든 그렇듯이 깨어지기는 쉬운 반면 회복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수술실에 들어가면 의사에게 맡겨야 합니다. 수술실에 들어가서도 반쯤 마취가 되어서 의사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면 아주 우스운 꼴이 됩니다. 우리의 마음이 고쳐지기를 바란다면 예수님에게 맡겨야 합니다. 헌데 여전히 자신의 강한 의지를 지니고 예수님 앞에 나아가는 이들이 있습니다.
영혼 수술의 기본은 겸손과 신뢰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곧잘 마지막 순간까지 ‘의심의 끈’을 놓치지 않아서 수술이 올바로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즉, 내 허물의 마지막 끄트머리를 놓치지 못하는 것이지요.
마지막 자존심, 그것을 놓아버리면 내가 죽어 사라져버릴 것 같은 그 자존심. 그것을 끊고 하느님이라는 바다에 몸을 던져야 비로소 그분을 제대로 알 수 있게 됩니다.
내가 옳다고 굳게 믿어오는 것, 내가 이것이 바르다고 끝까지 버티고 있는 것을 내려놓고 그분의 진정한 정의와 자비와 사랑에 몸을 맡기는 순간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 찰나의 순간에 일어날 수도 있는 그 의지의 봉헌 앞에서 우리는 수도 없이 주저하고 많은 시간을 허비합니다.
이는 체험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은 겉꾸미기 신앙에만 빠져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의 마음도 깨어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회복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이든 그렇듯이 깨어지기는 쉬운 반면 회복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수술실에 들어가면 의사에게 맡겨야 합니다. 수술실에 들어가서도 반쯤 마취가 되어서 의사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면 아주 우스운 꼴이 됩니다. 우리의 마음이 고쳐지기를 바란다면 예수님에게 맡겨야 합니다. 헌데 여전히 자신의 강한 의지를 지니고 예수님 앞에 나아가는 이들이 있습니다.
영혼 수술의 기본은 겸손과 신뢰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곧잘 마지막 순간까지 ‘의심의 끈’을 놓치지 않아서 수술이 올바로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즉, 내 허물의 마지막 끄트머리를 놓치지 못하는 것이지요.
마지막 자존심, 그것을 놓아버리면 내가 죽어 사라져버릴 것 같은 그 자존심. 그것을 끊고 하느님이라는 바다에 몸을 던져야 비로소 그분을 제대로 알 수 있게 됩니다.
내가 옳다고 굳게 믿어오는 것, 내가 이것이 바르다고 끝까지 버티고 있는 것을 내려놓고 그분의 진정한 정의와 자비와 사랑에 몸을 맡기는 순간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 찰나의 순간에 일어날 수도 있는 그 의지의 봉헌 앞에서 우리는 수도 없이 주저하고 많은 시간을 허비합니다.
이는 체험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은 겉꾸미기 신앙에만 빠져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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