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소식 - 바람과 추구 - 시련 - 극복 - 부르심 - 두 번째 소식 - 포기와 응답 - 진정으로 바라는 것을 확인 - 청원 - 성취 - 제자됨
첫 소식은 간단합니다. 그저 위대한 한 사람이 지나간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우리도 주변에서 그런 소식을 접합니다. 성당에 가면 좋다느니 하느님이 계신다느니 하는 첫 소식을 우리는 얼마든지 접할 수 있습니다.
이에 그 소식을 접한 이들에게 바람이 생겨납니다. 원하는 것이 생겨나지요. 그리고 그것을 추구하기 시작합니다. 뭔가 좋은 게 있다는 소식을 듣고 나면 가보고 싶어지게 되고 찾아 나서게 됩니다.
하지만 그리 쉽지는 않습니다. 바로 시련이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주변에서 뭐하러 그런 쓸데없는 짓을 하려고 하느냐며 그냥 세상살이나 잘 하라고 합니다. 잘 먹고 잘 살면 그만이고 그런 종교 따위는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거라고 조언을 합니다. 심한 경우에는 집에서 반대하고 나서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극복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바람은 사라지지 않고 우리는 그것을 추구하고 찾습니다. 그렇게 시련을 극복하고 우리는 내면으로 성장하며 원하는 것에 더욱 다가섭니다.
그리고 하느님은 그런 우리의 원의를 보시고 우리를 부르십니다.
그 무렵, 두 번째 소식이 들려옵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이 직접 들려오는 게 아니라 그것을 전해주는 자들을 통해서 들려옵니다. 바로 교회입니다. 교회가 그 역할을 담당합니다. 하느님을 찾아 나서는 사람에게 하느님의 대변자로 그분에 대해서 알려주고 그 소식을 전해 줍니다. 위로하고 용기를 주고 그가 하느님에게 다가서게 도와줍니다.
이에 당사자는 일어납니다. 하지만 그냥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지니고 있던 것을 포기하고 일어납니다. 장님인 걸인에게 겉옷은 모든 것입니다. 추위를 피하고 자신을 보호해주는 수단이지요. 하지만 그는 기꺼이 그것을 벗어 던집니다. 그만큼 자신이 다가가는 분의 능력에 신뢰를 가졌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그리고 그는 벌떡 일어나서 그분에게 다가갑니다. 기꺼이 적극적으로 응답을 합니다. 그리고 하느님 앞에 나섭니다.
헌데 여기서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예수님이 그에게 바라는 것을 물으십니다. 기적을 이루는 사람 앞에 소경이 나아갔는데 당연히 눈을 고쳐달라는 것이 뻔한 일일진데도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그가 실제로 원하는 것을 물으십니다.
그리고 그는 이번에는 진중하게 청원을 합니다. 그 동안의 모든 과정을 거쳐서 그의 원의는 보다 순수해져 있고 그의 믿음은 더욱 굳세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눈을 고쳐 달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의 청은 즉시 이루어집니다.
끝이 아닙니다. 그는 예수님을 따르기 시작합니다. 그가 처음에 바랐던 것은 눈을 뜨는 것이었는데 그는 이 모든 과정을 통해서 진정한 눈을 떠버린 것이지요. 그는 이제 예수님을 저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고 그분을 따르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역시도 때로는 개인적이고 심지어는 이기적인 바람으로 이 모든 것을 시작을 할 수 있지만 최종적으로는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이 되어야 합니다.
소경 바르티매오의 일화는 바로 우리 신앙인의 영적 과정을 고스란히 드러냅니다.
첫 소식은 간단합니다. 그저 위대한 한 사람이 지나간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우리도 주변에서 그런 소식을 접합니다. 성당에 가면 좋다느니 하느님이 계신다느니 하는 첫 소식을 우리는 얼마든지 접할 수 있습니다.
이에 그 소식을 접한 이들에게 바람이 생겨납니다. 원하는 것이 생겨나지요. 그리고 그것을 추구하기 시작합니다. 뭔가 좋은 게 있다는 소식을 듣고 나면 가보고 싶어지게 되고 찾아 나서게 됩니다.
하지만 그리 쉽지는 않습니다. 바로 시련이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주변에서 뭐하러 그런 쓸데없는 짓을 하려고 하느냐며 그냥 세상살이나 잘 하라고 합니다. 잘 먹고 잘 살면 그만이고 그런 종교 따위는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거라고 조언을 합니다. 심한 경우에는 집에서 반대하고 나서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극복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바람은 사라지지 않고 우리는 그것을 추구하고 찾습니다. 그렇게 시련을 극복하고 우리는 내면으로 성장하며 원하는 것에 더욱 다가섭니다.
그리고 하느님은 그런 우리의 원의를 보시고 우리를 부르십니다.
그 무렵, 두 번째 소식이 들려옵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이 직접 들려오는 게 아니라 그것을 전해주는 자들을 통해서 들려옵니다. 바로 교회입니다. 교회가 그 역할을 담당합니다. 하느님을 찾아 나서는 사람에게 하느님의 대변자로 그분에 대해서 알려주고 그 소식을 전해 줍니다. 위로하고 용기를 주고 그가 하느님에게 다가서게 도와줍니다.
이에 당사자는 일어납니다. 하지만 그냥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지니고 있던 것을 포기하고 일어납니다. 장님인 걸인에게 겉옷은 모든 것입니다. 추위를 피하고 자신을 보호해주는 수단이지요. 하지만 그는 기꺼이 그것을 벗어 던집니다. 그만큼 자신이 다가가는 분의 능력에 신뢰를 가졌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그리고 그는 벌떡 일어나서 그분에게 다가갑니다. 기꺼이 적극적으로 응답을 합니다. 그리고 하느님 앞에 나섭니다.
헌데 여기서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예수님이 그에게 바라는 것을 물으십니다. 기적을 이루는 사람 앞에 소경이 나아갔는데 당연히 눈을 고쳐달라는 것이 뻔한 일일진데도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그가 실제로 원하는 것을 물으십니다.
그리고 그는 이번에는 진중하게 청원을 합니다. 그 동안의 모든 과정을 거쳐서 그의 원의는 보다 순수해져 있고 그의 믿음은 더욱 굳세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눈을 고쳐 달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의 청은 즉시 이루어집니다.
끝이 아닙니다. 그는 예수님을 따르기 시작합니다. 그가 처음에 바랐던 것은 눈을 뜨는 것이었는데 그는 이 모든 과정을 통해서 진정한 눈을 떠버린 것이지요. 그는 이제 예수님을 저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고 그분을 따르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역시도 때로는 개인적이고 심지어는 이기적인 바람으로 이 모든 것을 시작을 할 수 있지만 최종적으로는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이 되어야 합니다.
소경 바르티매오의 일화는 바로 우리 신앙인의 영적 과정을 고스란히 드러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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