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안에서 하는 모든 일이 거룩하지는 않습니다. 거룩함과는 별 상관없는 일도 있고 거룩함을 흉내내기만 하는 일도 있습니다. 십자가를 앞세운다고 모두가 십자가의 영성을 따르지는 않으며 성모님을 앞세운다고 그분의 영성을 모두가 이해하는 것도 아닙니다.
정말 그 일이 필요해서 일을 시작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반대로 자신이 하려는 일에 정당성을 얻으려고 거룩한 표상을 이용해먹는 이도 있습니다. 그 둘을 분별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지요. 그래서 교회의 장상직분을 맡은 이는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자신에게 다가오는 이들을 분별해 낼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최종적인 보루도 존재합니다. 바로 공동체 안에서 작용하는 성령이지요.
성령은 ‘완전성’을 지향합니다. 그리고 그 완전성이라는 것은 ‘일의 성취’만이 아니라 그 구체적인 성취 과정도 포함되는 것입니다. 아이를 공부를 잘 하게 만드는 도전과제를 이룬다고 성령의 뜻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공부에 맛들여가도록 사랑과 정성으로 돌보는 것도 포함된다는 뜻이지요.
권위에 대항하려는 모든 저항들이 성령이 역사한다고 생각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그 중에는 정말 이기적인 목적으로 저항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입니다. 장상이 늘 옳을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순명을 우습게 생각하는 것은 더 큰 오류입니다.
작은 일에 충실한 사람이 큰 일에도 충실한 법입니다. 작지만 소중한 것들은 처참히 짓밟으면서 큰 대업을 이루겠다고 하는 사람은 자신만의 이기적인 이상주의에 빠져 있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의외로 이런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