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이들은 단죄를 받을 일이 없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생명을 주시는 성령의 법이 그대를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시켜 주었기 때문입니다. (로마 8,1-2)
로마서는 ‘은총과 믿음’의 서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온통 말하는 내용이 바로 ‘믿음’을 통해서 양분되는 두 방향을 설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런 내용을 바탕으로 어느 종파에서 ‘구원 받았습니까?’라고 묻는 것이 가능하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 믿음을 수용하는 문제는 무슨 자판기 커피 뽑아내는 성격의 일이 아닙니다. 믿음은 결단이며 그 결단을 통해서 삶은 명확하게 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외적으로 무언가가 변하는 것이 아니라 내적으로 완전히 새로이 변화하게 됩니다.
믿음을 실질적으로 받아들인 이는 더는 죄를 지을 마음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의 모든 행동은 죄에서 자유로운 행동이 됩니다. 이 말을 이해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여전히 우리는 죽음의 법에 묶여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비유를 들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남미 사람들은 콜라를 좋아합니다. 왜냐하면 이곳의 찌는 듯한 더위에 반해 시원하게 목을 축이는 콜라가 그 탄산과 강한 단맛으로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아주 어린 시절부터 콜라에 길들여져 있는 것이 보통입니다. 무슨 행사만 있으면 반드시 콜라가 있지요.
이런 이들에게 ‘녹차’를 대접한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러면 이들에게는 정말 이해하지 못할 행동이 될 것입니다. 어떤 차든지 설탕을 가득 타서 마시는 이들에게 한국의 녹차는 밍밍하니 아무런 맛도 없고 심지어는 떫떠름 하기까지 한 이상한 음료가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누군가가 녹차의 효능을 알고 또 반대로 콜라의 위험성을 알아서 어떻게든 싫지만 녹차에 익숙해지려고 노력하게 된다면 훗날에는 녹차의 다양한 면모를 즐기게 될 것입니다. 기회가 된다면 다도도 배워서 녹차를 다기로 우려내고 그 향과 빛깔과 맛을 즐기게 되겠지요.
은총의 법에 따르는 삶은 아직 죽음의 법에 묶인 이들에게는 지겨움과 거부감이 느껴지게 됩니다. 디스코텍에서 노는 걸 좋아하는 젊은이를 성시간에 데려와서 억지로 묵상을 하게 만들면 그 젊은이에게 그 시간은 죽음의 시간과도 같을 것입니다. 단순히 그를 끌고 들어와서 무릎을 꿇린다고 해서 그가 거룩한 이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보다도 본인의 의지가 필요하고 스스로 개선되려는 노력이 뒤따라야 서서히 물들어가는 것이지요.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빛의 시간을 즐기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오기를 노력하고 마침내 그 안에 머무는 이들은 따라서 ‘죄를 지을래야 지을 수가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됩니다. 죄를 짓는 것이야말로 가장 거북한 일이 되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외적으로는 그러한 내면이 좀처럼 드러나지 않게 됩니다.
하나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성경 안에서 예수님은 바리사이들을 당황스럽게 하는 행동을 많이 하셨습니다. 안식일날 치유 행위를 하는 것과도 같은 것이었지요. 바리사이들에게는 안식일은 일하면 안되는 날이라는 법이 존재하고 그 법을 깨는 것은 죄를 저지르는 행위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안식일에 병자를 치유하셨을 때에 예수님을 죄인 취급을 했지요. 하지만 예수님은 성령에 따라 살아가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죄를 지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일은 사람을 살리는 일이었지 율법을 산산조각 내어 하느님에게 정반대로 맞서려는 의도가 전혀 들어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우리 일상에서도 이런 일들이 많이 일어납니다. 우리는 여전히 죄의 법에 묶여 있는 이들입니다. 그래서 이런 저런 법규들이 난무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타인을 유심히 바라보는 일이 잦습니다. 그리고 뭔가 하나 어겼다 싶으면 그를 고발할 준비가 되어 있지요. 그러나 그들은 장님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자신의 근본 의도의 사악함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니까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이들은 단죄를 받을 일이 없습니다. 그들은 선을 즐기는 이들이니까요. 그들이 하는 모든 활동은 자신들이 즐기는 선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결코 단죄를 받을 일이 없습니다. 하지만 착각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그러한 단계에 이르기까지는 아직 많은 도전들이 남아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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