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에서 힘든 것이 언어이고 문화에 익숙해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단순히 시간만 흐른다고 그 점이 개선되는 것은 아닙니다. 먼저 언어만 살펴보아도 그렇습니다. 말이라는 것은 자꾸 써야 하고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상황을 겪어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헌데 그런 구체적인 상황이 불편하고 힘들다고 거부하기 시작하면 결국 남는 것은 ‘책에서만 본 언어’만 남게 되지요. 그때그때 생겨나는 변수에 대해서 하나도 준비되어 있지 않는 셈입니다. 정형화된 형식의 대화를 조금만 벗어나도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지 못하게 되지요.
문화에 익숙해진다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마음 안의 장벽을 없애는 것을 말합니다. 언제까지고 나는 한국 사람이고 너희는 볼리비아 사람이라는 생각을 지니고 있다면 아무리 가까이 다가가는 척을 해도 결국에는 그 장벽이 사라지지 않게 됩니다. 오히려 반대로 오랜 시간동안 더 높은 장벽을 쌓게 되지요. 결국 사람 사는 것이 똑같다는 것을 배워야 하는데 장벽을 치우지 않고 상대를 만나니 역으로 거부감이 더욱 커지는 것입니다. 선교지를 소개하라는 말에 자신이 겪은 고생담이나 죽자고 해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정말 자신이 겪은 이웃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전자는 장벽에 갇혀 살아온 사람이고 후자는 이웃에 다가선 사람이지요.
이를 인간관계에 고스란히 적용시켜 볼 수도 있습니다. 결국 두 사람이 하나가 된다는 것은 같은 언어를 쓰는 것이고 같은 문화를 공유하는 것입니다. 같은 한국말을 쓰더라도 서로 다른 말을 할 수 있고 같은 한국에 살더라도 전혀 다른 문화 안에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서로를 향한 다가섬이 전제되어 있지 않고 상대를 위해서 자신을 낮출 용의가 없다면 아무리 오랜 시간을 같이 살더라도 결국 남남이고 마는 것이지요.
우리는 서로를 향해서 자신을 열어야 합니다. 선교사는 선교지에서 그렇게 해야 하고 부부들은 서로간에 그렇게 해야 합니다. 단순히 오랜 시간이 지난다고 서로가 이해가 되지 않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를 신앙적으로 다음과 같이 표현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는 자는 자기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문화에 익숙해진다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마음 안의 장벽을 없애는 것을 말합니다. 언제까지고 나는 한국 사람이고 너희는 볼리비아 사람이라는 생각을 지니고 있다면 아무리 가까이 다가가는 척을 해도 결국에는 그 장벽이 사라지지 않게 됩니다. 오히려 반대로 오랜 시간동안 더 높은 장벽을 쌓게 되지요. 결국 사람 사는 것이 똑같다는 것을 배워야 하는데 장벽을 치우지 않고 상대를 만나니 역으로 거부감이 더욱 커지는 것입니다. 선교지를 소개하라는 말에 자신이 겪은 고생담이나 죽자고 해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정말 자신이 겪은 이웃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전자는 장벽에 갇혀 살아온 사람이고 후자는 이웃에 다가선 사람이지요.
이를 인간관계에 고스란히 적용시켜 볼 수도 있습니다. 결국 두 사람이 하나가 된다는 것은 같은 언어를 쓰는 것이고 같은 문화를 공유하는 것입니다. 같은 한국말을 쓰더라도 서로 다른 말을 할 수 있고 같은 한국에 살더라도 전혀 다른 문화 안에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서로를 향한 다가섬이 전제되어 있지 않고 상대를 위해서 자신을 낮출 용의가 없다면 아무리 오랜 시간을 같이 살더라도 결국 남남이고 마는 것이지요.
우리는 서로를 향해서 자신을 열어야 합니다. 선교사는 선교지에서 그렇게 해야 하고 부부들은 서로간에 그렇게 해야 합니다. 단순히 오랜 시간이 지난다고 서로가 이해가 되지 않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를 신앙적으로 다음과 같이 표현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는 자는 자기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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