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밤에 누가 바나나를 먹고 껍질을 휴지통에 그냥 버려 두었습니다. 음식 쓰레기통에 버리려고 집어드는 순간 붙어있던 초파리들이 우루루 날라다니기 시작합니다. 도대체 어디에 숨어 있다가 음식 향기를 맡고는 그리도 달려드는 건지 신기할 정도입니다.
한 영혼이 머물러야 할 곳에 있지 않고 밖으로 나다닐 때, 어둠의 영은 그 영혼을 잘 알아봅니다. 그리고 어느새 달려들어서 영혼을 꾀어낼 궁리를 합니다. 가능하면 조금 더 하느님에게서 멀어지도록 하느님을 잊을 수 있도록 어둠의 영들은 최대한 그 영혼이 엉뚱한 곳에 정신을 팔 수 있도록 노력을 합니다.
그들의 수단이라는 게 별 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영혼이 좋아할만한 것들이지요. 처음부터 본색을 제대로 드러내었다가는 당장 도망가 버릴테니까요. 그래서 시작은 아주 약한 것부터 시작합니다. 영혼이 즐기는 여가활동, 좋아하는 취미 등등으로 시작하지요. 처음에는 기분전환이다가 나중에는 거기에 조금씩 ‘집착’하게 만들어내고 결국에는 그것이 없으면 견디지 못한다고 생각하게 합니다. 그렇게 마음을 거기에 고착시키고 다른 것을 생각하지 못하게 만들면 일단 조금은 성공을 이룬 셈입니다.
그러다가 그러한 것들이 자신의 본질적인 삶, 영원과 관련되는 것과 부딪히면 그 영혼은 갈등하게 되는 것입니다. 비교할 이유가 없는 것들인데 이미 마음의 집착이 너무 커져 버려서 쉽게 놓을 수 없는 셈이지요. 그래서 결국 세상의 것을 ‘자발적으로’ 선택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영혼은 더욱 더 어둠의 길로 빠져드는 것입니다. 즉 미사를 빼먹고 등산을 간다거나, 과한 술자리를 토요일 밤에 하고 주일날 게으름 때문에 미사를 빠진다거나 하는 식이지요.
음식이 더 썩으면 구더기가 생기듯이 영혼이 더 썩으면 그 영혼 안에서부터 더러운 것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하느님의 은총 안에 머무르지 못하는 영혼은 결국 자기 스스로 어둠을 만들어내기 시작하지요. 시기, 질투, 분노, 증오, 나태, 탐욕과 같은 것들을 자신의 안에서부터 끄집어내기 시작합니다. 영혼이 부패되기 시작하는 것이지요.
어느 영혼이라도 하느님의 손길이 닿으면 다시 깨끗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영혼들은 자신들이 어디가 잘못되었는지도 분별하지 못한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오히려 반대이지요. 자신은 잘 하고 있는데 주변에서 공연히 난리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결국 영혼은 그렇게 스스로를 닫아 버리고 스스로 만든 어둠의 나락으로 빠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첫 유혹을 예방할 수 있었다면 아마 굉장히 작은 노력으로도 그 영혼의 순수함을 유지하고 나아가 향기가 나게까지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주 작은 소홀함으로 영혼은 단계를 거쳐 결국 지독한 어둠에 사로잡히기까지 하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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