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들은 스스로 뛰어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들을 부러워하지요. 그러나 이 둘은 모두 ‘마음의 부자’입니다. 달리 표현하면 ‘하느님이 필요없는 이들’이고 다른 표현을 하자면 ‘세상의 요소들이 자신들을 배불리는 이들’이지요.
무언가를 많이 소유했다는 것이 그를 뛰어나게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인 경우가 많습니다. 무언가를 많이 소유한다는 것은 그만큼 탐욕이 많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무언가를 자기 몫으로 소유한 사람은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 안달복달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나아가 무언가를 가진 사람은 그 밖의 것들을 누리지 못합니다. 그 밖의 것들이 자신의 손아귀에 들어오지 않는 이상은 결코 자신의 것이 아닌 셈입니다. 새의 울음소리를 있는 그대로 듣지 못해서 새장 안에 가두고 듣는 사람은 자신의 새장 안에 갇힌 새의 비명소리는 들을 수 있어도 다른 세상의 자유에 가득한 즐거운 새소리를 즐기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또 부자들은 친구가 없습니다. 물론 외적으로 보면 친구가 엄청 많은 것 같지만 그들의 모임은 경쟁과 시기와 질투와 증오가 오묘하게 뒤섞여 있습니다. 부자들은 서로를 내세우기에 바쁘고 서로의 의로움을 인정받기에 바쁩니다. 실제로는 전혀 의롭지도 전혀 내세울 것도 없으면서 말이지요. 무엇보다도 수많은 이들을 만나면서도 늘 공허감과 외로움에 시달립니다.
사람들은 부자이면 더 여유가 있고 하느님을 생각할 시간이 많지 않겠느냐고 합니다. 쉽게 생각하면 그럴 수 있을 것 같지만 실제적으로 ‘소유’라는 것에 대해서 올바르게 인식하고 나면 그럴 수 없다는 것을 더 쉽게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적어도 그가 자신의 강한 의지로 부자가 된 이상 그의 마음 속에 ‘하느님의 자리’는 좀처럼 존재하기 힘이 듭니다. 만일 그가 부자가 되려는 의지로 하느님을 추구했더라면 그는 엄청난 성덕에 올라 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재물에 대해서는 그리 뛰어난 모습을 보이지 못했겠지요.
그래도 사람들은 부자가 되고 싶어합니다. 그리고 하느님은 그런 이들을 가만히 지켜보고 계시지요.
무언가를 많이 소유했다는 것이 그를 뛰어나게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인 경우가 많습니다. 무언가를 많이 소유한다는 것은 그만큼 탐욕이 많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무언가를 자기 몫으로 소유한 사람은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 안달복달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나아가 무언가를 가진 사람은 그 밖의 것들을 누리지 못합니다. 그 밖의 것들이 자신의 손아귀에 들어오지 않는 이상은 결코 자신의 것이 아닌 셈입니다. 새의 울음소리를 있는 그대로 듣지 못해서 새장 안에 가두고 듣는 사람은 자신의 새장 안에 갇힌 새의 비명소리는 들을 수 있어도 다른 세상의 자유에 가득한 즐거운 새소리를 즐기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또 부자들은 친구가 없습니다. 물론 외적으로 보면 친구가 엄청 많은 것 같지만 그들의 모임은 경쟁과 시기와 질투와 증오가 오묘하게 뒤섞여 있습니다. 부자들은 서로를 내세우기에 바쁘고 서로의 의로움을 인정받기에 바쁩니다. 실제로는 전혀 의롭지도 전혀 내세울 것도 없으면서 말이지요. 무엇보다도 수많은 이들을 만나면서도 늘 공허감과 외로움에 시달립니다.
사람들은 부자이면 더 여유가 있고 하느님을 생각할 시간이 많지 않겠느냐고 합니다. 쉽게 생각하면 그럴 수 있을 것 같지만 실제적으로 ‘소유’라는 것에 대해서 올바르게 인식하고 나면 그럴 수 없다는 것을 더 쉽게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적어도 그가 자신의 강한 의지로 부자가 된 이상 그의 마음 속에 ‘하느님의 자리’는 좀처럼 존재하기 힘이 듭니다. 만일 그가 부자가 되려는 의지로 하느님을 추구했더라면 그는 엄청난 성덕에 올라 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재물에 대해서는 그리 뛰어난 모습을 보이지 못했겠지요.
그래도 사람들은 부자가 되고 싶어합니다. 그리고 하느님은 그런 이들을 가만히 지켜보고 계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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