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앗을 심는다는 상징적인 행위는 두가지 차원으로 드러납니다. 먼저 우리 안에 어떤 씨앗을 심도록 허락할 것인가 하는 내적인 차원과 나는 다른 이들에게 어떤 씨앗을 심을 것인가 하는 외적인 차원입니다.
먼저 우리는 우리가 선별해서 받아들이는 것을 우리 안에 심습니다. 맛있는 음식, 새로운 패션, 건강법 등과 같은 것에는 촉을 세우고 관심을 두는 한편, 참되고 거룩한 삶을 이루는 방법, 하느님 안에서 살아가는 삶과 같은 것에는 무관심한 경우가 많습니다. 기도는 무조건 ‘지겨운 일’이라고 생각을 하고 친구와의 술자리는 빠지지 않고 나아가는 모습 속에서 우리 자신 안에 과연 어떠한 씨앗을 심고 있는가가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좋은 씨앗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우리 내면 안에 심어야 합니다. 그래서 좋은 씨앗을 심기 위한 거룩한 환경은 필수적입니다.
나아가서 우리는 다른 이들의 내면에 씨앗을 심습니다. 우리의 모든 말과 행동은 하나의 씨앗이 되어 다른 이에게 전해집니다. 내가 하는 긍정적이고 좋은 말은 다른 이에게 용기의 씨앗이 되어 심겨지고, 반대로 나의 부정적이고 악한 말은 타인의 마음을 망쳐버리게 되는 것이지요. 흔히 부모님의 삶이 자녀들에게 전수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부모님들은 자녀들에게 매일같이 일종의 씨앗을 심고 있지요. 세속적이고 허영에 가득찬 부모는 그 씨앗을 자녀들에게 전해주게 마련이고, 평화롭고 인내로운 부모는 그 씨앗을 자녀에게 전해주게 됩니다.
때로는 내가 머무르는 삶의 환경을 둘러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이 나의 내면에 일종의 씨앗이 되어 파고들어오기 때문입니다. 매일같이 쿵쾅거리는 음악을 듣는 이가 깊은 성찰에 이를 리가 없습니다. 툭하면 불러내어서 한 잔 거나하게 걸치는 친구들이 가득한 환경에서 영성의 싹을 키워 나가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좋은 씨앗을 우리 안에 심고 그 씨앗을 키워서 다른 이들에게 전해줄 수 있어야 합니다. ‘기도’라는 행위가 소중한 이유입니다. 형식적인 기도가 아니라 진정한 의미로 기도할 줄 아는 사람은 언제나 보다 참된 길을 찾아 나서기 시작할 것입니다.
먼저 우리는 우리가 선별해서 받아들이는 것을 우리 안에 심습니다. 맛있는 음식, 새로운 패션, 건강법 등과 같은 것에는 촉을 세우고 관심을 두는 한편, 참되고 거룩한 삶을 이루는 방법, 하느님 안에서 살아가는 삶과 같은 것에는 무관심한 경우가 많습니다. 기도는 무조건 ‘지겨운 일’이라고 생각을 하고 친구와의 술자리는 빠지지 않고 나아가는 모습 속에서 우리 자신 안에 과연 어떠한 씨앗을 심고 있는가가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좋은 씨앗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우리 내면 안에 심어야 합니다. 그래서 좋은 씨앗을 심기 위한 거룩한 환경은 필수적입니다.
나아가서 우리는 다른 이들의 내면에 씨앗을 심습니다. 우리의 모든 말과 행동은 하나의 씨앗이 되어 다른 이에게 전해집니다. 내가 하는 긍정적이고 좋은 말은 다른 이에게 용기의 씨앗이 되어 심겨지고, 반대로 나의 부정적이고 악한 말은 타인의 마음을 망쳐버리게 되는 것이지요. 흔히 부모님의 삶이 자녀들에게 전수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부모님들은 자녀들에게 매일같이 일종의 씨앗을 심고 있지요. 세속적이고 허영에 가득찬 부모는 그 씨앗을 자녀들에게 전해주게 마련이고, 평화롭고 인내로운 부모는 그 씨앗을 자녀에게 전해주게 됩니다.
때로는 내가 머무르는 삶의 환경을 둘러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이 나의 내면에 일종의 씨앗이 되어 파고들어오기 때문입니다. 매일같이 쿵쾅거리는 음악을 듣는 이가 깊은 성찰에 이를 리가 없습니다. 툭하면 불러내어서 한 잔 거나하게 걸치는 친구들이 가득한 환경에서 영성의 싹을 키워 나가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좋은 씨앗을 우리 안에 심고 그 씨앗을 키워서 다른 이들에게 전해줄 수 있어야 합니다. ‘기도’라는 행위가 소중한 이유입니다. 형식적인 기도가 아니라 진정한 의미로 기도할 줄 아는 사람은 언제나 보다 참된 길을 찾아 나서기 시작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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