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좋고 선한 것이라면 우리는 마음껏 사랑할 수 있습니다. 모두가 정직하고 선한 마음을 품고 있다면 우리는 힘껏 사랑하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세상은 그런 환상의 나라가 아니라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 안에서부터 분리된 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는 선을 향한 추구이고 다른 하나는 이기적이고 못된 마음입니다.
그럼 왜 하느님은 이런 우리를 단순화 시키지 않으신 것일까요? 당신의 전능으로 우리가 선한 일만 하도록 만들지 않으셨을까요?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우리가 ‘선한 일만’을 하도록 이미 만들어져 있다면 그것은 더이상 선한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른 말로 악한 일을 할 가능성 자체가 틀어막혀 있다면 우리가 하는 모든 행동은 더는 선이 아닙니다. 그냥 그렇게 되는 것일 뿐이지요.
우리가 ‘선과 악’의 기로에 서 있는 이유는 바로 우리 자신을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선을 향해서 노력함으로써 그 선이 보다 소중한 가치를 지닐 수 있게 하기 위함이지요.
그럼에도 우리의 의문은 가시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선택의 여지가 있는 것은 알겠는데 왜 하느님은 악한 이들을 정돈하시지 않고 내버려두는 것일까요? 그들이 악을 행하는 것에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하지 않을까요?
하느님은 적절한 조치를 취하시고 계십니다. 그러나 다만 당신이 직접 일하시지 않을 뿐이지요. 하느님은 세상에 만연한 악을 위해서 당신의 자녀들을 내어 놓으셨습니다. 그들이 세상에 나가 빛과 소금이 되어 퍼지고 있는 악을 치유하기를 바라셨지요. 그렇게 해서 악한 이들이 다시 뉘우쳐 돌아오게 하고, 또 그만한 노력을 쏟는 당신의 자녀들에게는 합당한 상급을 내어주고자 하십니다.
그럼 우리는 과연 어떤 일을 해야 하는 것일까요?
여기에는 사람마다 다양한 옵션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핵심은 나에게 주어진 핵심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사제는 신앙 공동체의 목자로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고 신앙인은 자신이 맡은 역할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지요. 신자인 정치인은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대로 자신의 과업을 수행해야 하고 신자인 경제인은 하느님이 바라시는 대로 맡은 재화를 관리해야 합니다.
여기까지가 이론이고 이상향입니다. 왜냐하면 실제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흐르고 있기 때문이지요. 실제로 일어나는 일은 우리가 쉽게 관찰할 수 있듯이 전혀 다릅니다. 세상은 이상향과는 참으로 동떨어져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몇 가지를 염두에 두고 살아갔으면 합니다.
완벽주의를 바래서는 안됩니다. 언제나 오류가 존재하고 없던 오류도 생겨날 수 있다는 것을 늘 마음에 두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모든 오류를 뽑아내어 완벽한 환경을 구축하려고 들지 말아야 합니다. 밀과 가라지가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고 마지막 날에 하느님께서 정돈하시도록 맡겨 드려야 합니다.
염세주의나 나태함에 빠져서는 안됩니다. 해 보니 안되더라는 식의 사고는 곤란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맡은 역할 안에서 최선을 다 해야 합니다. 비록 싹이 트지 않더라도 씨는 계속 뿌려야 합니다. 그러다보면 언젠가는 싹이 트게 마련입니다. 아무런 씨도 뿌리지 않는데 싹이 틀 리는 없습니다.
우리는 신앙인이라는 것을 잊어서도 안됩니다. 마냥 세상의 원리로만 일들을 해결하려고 들지 말아야 합니다. 정치적이고 세속적인 사고를 초월하는 신앙적이고 신비적인 사고를 지닐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로서는 최선을 다 하겠지만 마지막에는 하느님을 신뢰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하느님은 이 모든 것을 알고 계시면서 당신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그분의 ‘섭리’를 신뢰하고 내어맡기면 됩니다. 그러나 이 내어맡김이 우리의 게으름의 핑계가 되어서도 안됩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신앙인 각자에게는 저마다의 탈렌트, 재능에 따라서 져야 할 십자가가 주어져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충실히 날마다 져야 합니다.
세상은 이런 우리를 보고 때로는 과격하다, 때로는 나태하다 하면서 제멋대로 평을 내리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들을 완전히 만족시킬 수 있는 이는 세상에 단 한 명도 없을 것입니다. 왜냐면 저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해야 한다고 내세울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오직 주님만 따라가면 됩니다. 그분이 가르치신 두 가지 핵심 계명을 잊지 말고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면서 내 십자가를 지고 그분을 따르면 됩니다. 그렇게 우리의 신앙을 사람들 앞에 드러내어서 사람들이 우리 주님을 알 수 있게 하면 됩니다. 이것이 우리의 기본 사명입니다.
그럼 왜 하느님은 이런 우리를 단순화 시키지 않으신 것일까요? 당신의 전능으로 우리가 선한 일만 하도록 만들지 않으셨을까요?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우리가 ‘선한 일만’을 하도록 이미 만들어져 있다면 그것은 더이상 선한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른 말로 악한 일을 할 가능성 자체가 틀어막혀 있다면 우리가 하는 모든 행동은 더는 선이 아닙니다. 그냥 그렇게 되는 것일 뿐이지요.
우리가 ‘선과 악’의 기로에 서 있는 이유는 바로 우리 자신을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선을 향해서 노력함으로써 그 선이 보다 소중한 가치를 지닐 수 있게 하기 위함이지요.
그럼에도 우리의 의문은 가시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선택의 여지가 있는 것은 알겠는데 왜 하느님은 악한 이들을 정돈하시지 않고 내버려두는 것일까요? 그들이 악을 행하는 것에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하지 않을까요?
하느님은 적절한 조치를 취하시고 계십니다. 그러나 다만 당신이 직접 일하시지 않을 뿐이지요. 하느님은 세상에 만연한 악을 위해서 당신의 자녀들을 내어 놓으셨습니다. 그들이 세상에 나가 빛과 소금이 되어 퍼지고 있는 악을 치유하기를 바라셨지요. 그렇게 해서 악한 이들이 다시 뉘우쳐 돌아오게 하고, 또 그만한 노력을 쏟는 당신의 자녀들에게는 합당한 상급을 내어주고자 하십니다.
그럼 우리는 과연 어떤 일을 해야 하는 것일까요?
여기에는 사람마다 다양한 옵션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핵심은 나에게 주어진 핵심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사제는 신앙 공동체의 목자로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고 신앙인은 자신이 맡은 역할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지요. 신자인 정치인은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대로 자신의 과업을 수행해야 하고 신자인 경제인은 하느님이 바라시는 대로 맡은 재화를 관리해야 합니다.
여기까지가 이론이고 이상향입니다. 왜냐하면 실제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흐르고 있기 때문이지요. 실제로 일어나는 일은 우리가 쉽게 관찰할 수 있듯이 전혀 다릅니다. 세상은 이상향과는 참으로 동떨어져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몇 가지를 염두에 두고 살아갔으면 합니다.
완벽주의를 바래서는 안됩니다. 언제나 오류가 존재하고 없던 오류도 생겨날 수 있다는 것을 늘 마음에 두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모든 오류를 뽑아내어 완벽한 환경을 구축하려고 들지 말아야 합니다. 밀과 가라지가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고 마지막 날에 하느님께서 정돈하시도록 맡겨 드려야 합니다.
염세주의나 나태함에 빠져서는 안됩니다. 해 보니 안되더라는 식의 사고는 곤란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맡은 역할 안에서 최선을 다 해야 합니다. 비록 싹이 트지 않더라도 씨는 계속 뿌려야 합니다. 그러다보면 언젠가는 싹이 트게 마련입니다. 아무런 씨도 뿌리지 않는데 싹이 틀 리는 없습니다.
우리는 신앙인이라는 것을 잊어서도 안됩니다. 마냥 세상의 원리로만 일들을 해결하려고 들지 말아야 합니다. 정치적이고 세속적인 사고를 초월하는 신앙적이고 신비적인 사고를 지닐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로서는 최선을 다 하겠지만 마지막에는 하느님을 신뢰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하느님은 이 모든 것을 알고 계시면서 당신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그분의 ‘섭리’를 신뢰하고 내어맡기면 됩니다. 그러나 이 내어맡김이 우리의 게으름의 핑계가 되어서도 안됩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신앙인 각자에게는 저마다의 탈렌트, 재능에 따라서 져야 할 십자가가 주어져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충실히 날마다 져야 합니다.
세상은 이런 우리를 보고 때로는 과격하다, 때로는 나태하다 하면서 제멋대로 평을 내리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들을 완전히 만족시킬 수 있는 이는 세상에 단 한 명도 없을 것입니다. 왜냐면 저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해야 한다고 내세울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오직 주님만 따라가면 됩니다. 그분이 가르치신 두 가지 핵심 계명을 잊지 말고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면서 내 십자가를 지고 그분을 따르면 됩니다. 그렇게 우리의 신앙을 사람들 앞에 드러내어서 사람들이 우리 주님을 알 수 있게 하면 됩니다. 이것이 우리의 기본 사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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