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이처럼 많은 비유로 말씀을 하셨다. 비유를 들지 않고는 그들에게 말씀하지 않으셨다. (마르 4,33-34)
사랑을 드러내어 보일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그 본질상 보이지 않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사랑은 여러가지 다양한 비유적인 형태로 드러날 뿐입니다.
사랑은 연인들 사이에 보내는 작은 하트 모양의 이모티콘에도 담길 수 있고, 무뚝뚝한 남편이 저녁 늦게 퇴근하며 들어오면서 사들고 오는 통닭 봉지에도 담길 수 있습니다. 다들 저마다 자신이 표현할 수 있는 방식으로, 그리고 상대에게 전달될 수 있는 방식으로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이지요.
천상에 대한 가르침은 당연히 비유적인 표현으로 밖에는 서술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무엇보다도 하늘나라에 대해서 가르치셔야 했기 때문에 비유를 쓸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트 모양과 통닭 그 자체가 사랑은 아닌 것처럼 아무리 훌륭한 비유를 든다고 해도 그것이 실제 그 자체를 온전히 담지는 못합니다. 다만 우리는 실제에 대한 희미한 이미지를 얻어낼 수 있을 뿐이지요.
그러나 우리의 믿음이 커지고 지혜가 자랄수록 많은 비유가 필요없게 됩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는 따로 설명을 해 줄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제자들은 무엇보다도 믿음의 사람들이었고 그래서 그들에게는 충분히 설명을 해 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에게는 비유를 쓸 수 밖에 없었습니다. 사람들에게 일부러 뭔가를 감춘 것이 아니라 비유가 아니고서는 사람들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방정식을 배운 사람에게 X라는 문자는 미지의 수를 드러내는 기본 철자입니다. 하지만 이제 겨우 글자를 배우는 아이에게 방정식 공식을 적어 주면 아이는 도대체 이 꼬부랑 문자를 왜 자신에게 드러내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아이에게는 그 수준에 맞는 설명을 해 주어야 하는 것이지요.
미사 안에서 예수님이 살아 계신다는 말 한 마디면 믿음의 사람들은 충분합니다. 그들은 그 말로 힘을 얻고 미사의 모든 부분에서 보다 신중을 기하고 마음을 모을 것입니다. 하지만 믿음이 부족한 이들에게 미사 안에서 예수님이 살아 계신다는 말은 별 소용이 없는 말입니다. 차라리 그들에게는 인간 역사와 더불어 형성된 미사의 구조에 대한 설명부터 시작하는 것이 낫습니다. 제의의 색깔에 대한 설명이나 초의 숫자에 대한 설명을 할 필요가 있지요. 하지만 믿음의 사람들은 미사 안에서 예수님의 현존으로 충분한 것입니다.
사실 지금 위의 모든 설명도 일종의 비유입니다. 여러분들이 소화하기 쉽게 비유에 대한 비유를 한 셈이지요. 모쪼록 여러분들 안에 믿음이 자라나 그 어떤 비유도 필요없이 실제를 마주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겠습니다.
사랑을 드러내어 보일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그 본질상 보이지 않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사랑은 여러가지 다양한 비유적인 형태로 드러날 뿐입니다.
사랑은 연인들 사이에 보내는 작은 하트 모양의 이모티콘에도 담길 수 있고, 무뚝뚝한 남편이 저녁 늦게 퇴근하며 들어오면서 사들고 오는 통닭 봉지에도 담길 수 있습니다. 다들 저마다 자신이 표현할 수 있는 방식으로, 그리고 상대에게 전달될 수 있는 방식으로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이지요.
천상에 대한 가르침은 당연히 비유적인 표현으로 밖에는 서술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무엇보다도 하늘나라에 대해서 가르치셔야 했기 때문에 비유를 쓸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트 모양과 통닭 그 자체가 사랑은 아닌 것처럼 아무리 훌륭한 비유를 든다고 해도 그것이 실제 그 자체를 온전히 담지는 못합니다. 다만 우리는 실제에 대한 희미한 이미지를 얻어낼 수 있을 뿐이지요.
그러나 우리의 믿음이 커지고 지혜가 자랄수록 많은 비유가 필요없게 됩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는 따로 설명을 해 줄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제자들은 무엇보다도 믿음의 사람들이었고 그래서 그들에게는 충분히 설명을 해 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에게는 비유를 쓸 수 밖에 없었습니다. 사람들에게 일부러 뭔가를 감춘 것이 아니라 비유가 아니고서는 사람들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방정식을 배운 사람에게 X라는 문자는 미지의 수를 드러내는 기본 철자입니다. 하지만 이제 겨우 글자를 배우는 아이에게 방정식 공식을 적어 주면 아이는 도대체 이 꼬부랑 문자를 왜 자신에게 드러내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아이에게는 그 수준에 맞는 설명을 해 주어야 하는 것이지요.
미사 안에서 예수님이 살아 계신다는 말 한 마디면 믿음의 사람들은 충분합니다. 그들은 그 말로 힘을 얻고 미사의 모든 부분에서 보다 신중을 기하고 마음을 모을 것입니다. 하지만 믿음이 부족한 이들에게 미사 안에서 예수님이 살아 계신다는 말은 별 소용이 없는 말입니다. 차라리 그들에게는 인간 역사와 더불어 형성된 미사의 구조에 대한 설명부터 시작하는 것이 낫습니다. 제의의 색깔에 대한 설명이나 초의 숫자에 대한 설명을 할 필요가 있지요. 하지만 믿음의 사람들은 미사 안에서 예수님의 현존으로 충분한 것입니다.
사실 지금 위의 모든 설명도 일종의 비유입니다. 여러분들이 소화하기 쉽게 비유에 대한 비유를 한 셈이지요. 모쪼록 여러분들 안에 믿음이 자라나 그 어떤 비유도 필요없이 실제를 마주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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