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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방에 가는 아이

본당 복사단 한 꼬맹이가 인터넷방(우리나라로 치면 PC방)에 가는 맛을 들인 모양입니다. 헌데 문제는 엄마에게 거짓말을 하기 시작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엄마가 속이 상한 모양입니다. 도무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더군요.

엄마에게 아이가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이해하는 것이 가장 우선이라고 했습니다. 인터넷방을 가는 것 자체가 죄는 아니니 무턱대고 아이를 제어하려고 하지 말고 아이와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누어 보라고 했습니다.

아이들은 맑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거짓말을 하려고 태어나는 아이들은 없지요. 거짓말은 ‘두려움, 공포’가 원인입니다. 아이는 옷을 벗고 다니는 것에 대해서 전혀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합니다. 하지만 철이 들기 시작하면서 옷을 벗고 다니는 것은 사회적으로 수치스러운 모습이라는 것을 습득하게 되고 그 뒤로부터 알몸으로 다니는 것을 부끄럽게 느끼기 시작하는 것이지요.

인터넷방에 가는 아이가 그것을 엄마에게 숨기는 데에는 다양한 배경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먼저는 자신이 인터넷 방에 가는 것을 스스로 수치스럽게 여기고 숨기고 싶어한다는 것이 첫번째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아이가 왜 그것을 수치스럽게 느끼는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다음 단계로 왜 엄마에게 그것을 숨기는지 살펴 보아야 합니다. 여기에는 필시 엄마의 행동에도 우리가 지나칠 수 없는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엄마는 아이와 대화를 좀처럼 시도하지 않은 것입니다. 뭔가 문제가 발생하면 급한 불을 끄느라고 서둘렀겠지요. 심하면 아이들을 때리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러니 아이는 자신의 욕구는 상당히 강한데 그것을 엄마와 평화로운 방법으로 해결할 수가 없으니 ‘거짓말’이라는 수단을 쓰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엄마는 자신의 교육 수단을 재점검해야 합니다. 정말 아이를 인격적으로 대하고 있고 아이와 대화를 하려고 시도하는지 살펴야 하지요. 나아가서 인터넷방에 가는 것 자체가 죄악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컴퓨터 게임을 하는 것 자체가 죄악이 되지는 않는다는 것, 다만 엄마와 약속을 하고 그것을 지키도록 노력하고 그 게임이 평소의 학업생활에 지장을 주지 않는 방법을 찾아야 하겠지요.

사실 이 엄마는 곧잘 아이를 때리곤 했던 것입니다. 최근 들어서 제 성경강의를 들으면서 많이 바뀌고 있다고 고백하더군요. 그래서 용기를 심어 주었습니다. 우리는 완벽하지 않다고, 많은 실수를 통해서 배워 나갈 것이고 최종적으로는 모든 것이 잘 될 거라고 말했습니다. 모쪼록 아이 엄마가 용기를 얻어서 자신의 인내를 훈련하고 아이를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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