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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할 때, 그의 단점은 사라지고 장점은 부각됩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미워할 때, 그의 장점은 사라지고 단점은 부각되지요.

사람은 누구나 장점과 단점이 있게 마련입니다. 심지어 살인자 아들을 지니고 있어도 그 아들을 사랑하는 어머니의 눈에는 그저 불쌍한 한 인간이 보일 뿐이고, 반대로 세상을 구한 장군이 눈 앞에 있어도 그 사람을 미워하는 아내의 눈에는 온갖 결점 투성이의 인간이 있을 뿐입니다.

세상의 자녀들은 ‘증오’에 익숙합니다. 그래서 곧잘 상대의 결점을 들추어내고 서로를 향해 비난의 화살을 쏘아대기 일쑤입니다. 예수님이 세상의 심판대 앞에서 침묵하신 이유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을 가장 공정한 심판관으로 내세운 로마의 총독은 ‘진리’가 무엇인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언뜻 손을 씻는 행위로 자신의 무결함을 드러내는 듯 했지만 결국 군중을 두려워하는 한 초라한 인간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지금 세상을 보십시오. 중요한 사회적 이슈가 드러날 때마다 인터넷은 화끈 달아오르면서 많은 이들이 ‘진리’를 추구하는 데에 열중하고 있는 듯 합니다. 하지만 과연 그들이 모두 그렇게 공정하고 정의로울까요? 그들의 생각에 오류는 없을까요? 그들은 모든 정보를 하나도 빠짐없이 꿰고 있는 것일까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질문은 ‘그들은 사랑하는 이들’일까요?

아닙니다. 그들 대부분은 ‘사랑’이 뭔지 모르고 예수님을 만나서는 ‘진리가 무엇이냐?’라고 물을 사람들입니다. 언뜻 정의를 위해서 심장이라도 꺼내 줄 것 같은 열의를 보이는 것 같지만 실제 삶에서 이웃을 위해서 자신을 진정으로 헌신하는 삶의 모습을 드러내는 사람은 생각처럼 많지 않습니다. 사고 활동은 극도로 고조되어 모든 일의 진실을 알고 있다는 듯이 처신하지만 실제로 가장 필요한 영원에 대한 지식은 결여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랑은 지식으로 배울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실천을 통해서 단련되고 수련되어지는 것입니다. 누군가 나에게 사랑이 뭔지를 묻는다면 나는 그의 질문에 수사학적인 문구로 대답하기보다는 말없이 내가 사랑하는 이들, 허물없이 나와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는 이들 앞으로 그를 데려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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