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는 시선을 넓히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일입니다. 간단한 예로 한 사람이 술을 토할 정도로 마시는 것은 그 순간에 집중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토하려고 또 다음날 머리가 깨어지도록 아프려고 술을 마시는 건 아닙니다. 지금이라는 순간을 즐기면서 술을 마시고 취하고 싶다는 욕구가 지나쳐서 육체의 한계선을 넘어 알콜을 집어 넣다보니 결국 토하게 되고 다음날 머리가 깨어지는 것이지요. 그가 조금이라도 멀리 바라보는 시선을 지니고 있었더라면 자신의 육신의 한계를 함부로 넘어서까지 술을 마시지는 않을 것입니다.
시선을 더욱 넓히면 '영원'까지 이르게 됩니다. 그러면 현세의 사정을 전혀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지요. 우리는 세상에 취해 있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그 너머를 바라보지 못하지요. 지금 눈 앞에 보이는 사물들과 그 결과물들에 취해서 거기에만 집중하고 보다 중요한 것을 망각하고 있는 셈이지요. 시선을 넓혀야 합니다. 그래서 영원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술에 만취한 뒤에 어리석은 일을 저지르는 것처럼 세상에 만취해서 어리석은 일을 저지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영원을 바라보는 사람, 영원하신 분을 사랑하는 사람, 스스로 십자가를 지는 사람, 모두가 같은 표현입니다. 우리는 결국 십자가를 짊어짐으로써 영원하신 분을 사랑하게 되고, 영원을 바라보게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시선을 더욱 넓히면 '영원'까지 이르게 됩니다. 그러면 현세의 사정을 전혀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지요. 우리는 세상에 취해 있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그 너머를 바라보지 못하지요. 지금 눈 앞에 보이는 사물들과 그 결과물들에 취해서 거기에만 집중하고 보다 중요한 것을 망각하고 있는 셈이지요. 시선을 넓혀야 합니다. 그래서 영원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술에 만취한 뒤에 어리석은 일을 저지르는 것처럼 세상에 만취해서 어리석은 일을 저지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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