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부르시어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고, 둘씩 짝지어 파견하기 시작하셨다. (마르 6,7)
제자들은 스스로 복음을 선포하러 간 것이 아닙니다. 먼저는 부름을 받았고, 권한을 받았으며, 나아가 파견을 받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부르심 없이는 아무런 일도 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우리를 선택한 것입니다. 우리가 선택을 했다면 우리가 내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부르심을 받았다면 부르신 분의 권위와 능력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왕의 부름을 받은 종은 왕이 통치하는 곳을 벗어나지 않는 이상은 그 명을 거역할 수 없습니다. 만일 우리가 하느님의 사명에서 벗어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큰 착각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느님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은 없으니까요.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권한을 나누어 받습니다. 부르심을 받는 것은 뭔가 일을 맡는다는 것이고 그 일을 수행하기 위한 권한도 나누어 받는 것이지요. 권한도 없이 일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제자들이 받은 권한은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이었습니다. 제자들은 교만하거나 우쭐대거나 다른 이들보다 위에 서는 권한을 받은 게 아닙니다. 제자들은 다만 더러운 영에 대한 권한을 받았을 뿐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겸손해야 했지요. 그리고 더러운 영들을 쫓아내는 일을 해야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들은 ‘파견’을 받습니다. 임무와 권한을 받고 보냄을 받는 것이지요. 파견을 받는 이는 자신이 갈 곳을 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인이 보내는 곳에 가야 합니다. 주인이 원하는 곳이 꼭 자신이 원하는 곳이 될 리는 없습니다. 마치 선교사가 자신이 상상하던 모든 것이 존재하는 곳에 파견받는 일은 없는 것과 같습니다. 언제나 부족함이 있고 모자람이 있습니다. 하지만 동반자가 있습니다. 힘이 들 때 기댈 수 있는 동료가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인생길에서 주어진 선물입니다. ‘우정’은 선물입니다.
이제는 우리 차례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태어난 날부터 우리는 부르심을 받고 있습니다. 그 부르심은 반드시 사제 성소나 수도 성소로만 꽃피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이가 하느님을 만나러 가는 길은 ‘성소’입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다른 곳이 아니라 바로 당신을 향해 부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분에게 다가가면 그분의 권한을 나누어 받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더러운 영에 대한 권한을 받았지만 오늘날 우리들은 다양한 은사의 영을 받을 수 있습니다. 지혜의 영, 식별의 영, 봉사의 영 등등 온갖 종류의 다양한 영을 받아 그 권능으로 활동할 수 있습니다. 누구는 요리를 잘하고, 누구는 독서를 좋아하며, 누구는 노래를 잘 할 것입니다. 그 모든 것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부어주신 재능이며 봉사하라고 주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때가 되면 파견을 받습니다. 나아가 일을 하라는 것이지요. 단순히 먹고 사는 일이 아니라 타인을 돕고 이끄는 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늘 부족함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우정’이 있기에 우리는 이 힘든 길을 힘차게 걸어나갈 수 있습니다. 그 우정은 무엇보다도 예수님과의 우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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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신부님
신부님
감사합니다
신부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