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아름다움과 추함을 구분해 낼 수 있습니다. 균형이 잘 잡히고 조화로운 것은 아름답게 느끼고 엉망진창이고 마구 어지럽혀져 있는 것은 추하게 느끼지요. 우리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없는 이상은 통상적인 미의 기준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내적으로도 같은 미의 기준을 지니고 있습니다. 선하고 진실한 것을 아름답다고 느끼고 반대로 악하고 거짓된 것을 추하다고 느끼지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우리의 내적 미의 기준은 우리가 저지르는 악으로 인해서 어지럽혀져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내적 아름다움을 아예 감지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훗날 우리가 지상의 육신을 두고 새로운 육신을 받을 때에 그 아름다움은 우리의 내적 아름다움에 의해서 좌우됩니다. 마치 아주 추하게 생긴 라디오에서 아름다운 음악이 흘러 나오고 있다고 할 때에 눈을 잃어버린 사람에게는 그 추한 라디오는 그저 아름다운 음악을 뿜어내는 존재로만 인식되는 것과 비슷합니다. 우리가 지상의 육신을 내려놓는 그 날 우리가 외적으로 느끼던 사물은 모두 자취를 감추게 됩니다. 사물이 사라진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물을 인식하는 방식 자체가 달라지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아주 아름다운 외모를 지닌 여인이 있다고 생각해 봅시다. 하지만 그 내면에는 아주 추한 욕망이 존재하고 위선과 기만과 허영이 가득합니다. 우리가 세상에 살아가는 동안에는 우리의 육신에 달린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기에 그녀가 아름답게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세상을 떠나고 나면 더는 그녀를 외적, 육체적 아름다움으로 인식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녀의 내면에 존재하던 것이 드러나게 되지요. 그러면 그녀는 아주 추악한 존재로 변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탄이 추악하게 그려지는 것은 실제로 추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추함은 물리적이고 외적인 것이 아니라 그의 내면의 추악함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천사의 아름다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들의 내면이 아름답고 우리가 그것을 영적으로 느끼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가 지니고 있는 외모는 훗날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에는 우리의 내면에 지니고 있는 보화들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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