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신앙인들이 착각하고 살아가는 것이, '미사는 의무다'라는 것입니다. 흔히 예비자 교리 때에 신앙인들이 어떻게든 주일미사에 빠지지 않게 하려는 마음으로 천주교 신자의 6대 의무를 가르치면서 꼭 빠지지 않고 이야기하는 것이지요.
(6대 의무/ 주일과 의무축일미사 참례, 매주 금요일 금육과 재의 수요일과 성금요일 단식, 1년에 한 번의 고해성사, 1년에 한 번의 영성체, 교무금 납부, 혼인성사에 관한 혼인법 준수)
사실 이는 교회의 기본 테두리를 둘러준 셈입니다. ‘최소한 이것은 하라’는 것이지요. 헌데 신자들은 ‘이것만 하자’가 되어 버리는 것이 일상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벗어나지 않으면 그 어떤 다른 어둠의 행위를 내면으로 해도 크게 죄스럽지 않다고 여기지요.
미사는 의무가 아닙니다. 미사는 ‘찬미와 감사의 행위’여야 하고, 그러한 행위에 진실하게 참여하는 이상 기쁨이 가득한 행위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미사는 울며 겨자먹기로 가야 하는 의무가 아니라 기쁨이 가득한 우리의 ‘권리’입니다.
한국 신자들의 이 ‘의무규정준수’는 제법 역사가 오래된 것이고 습관으로 굳어버린 것입니다. 아직도 수많은 교리 안에서 ‘신자 유지’를 목적으로 의무사항에 대해서 열을 토해서 가르치고 그것을 어기면 중죄를 저지르는 것으로 가르치고 있지요.
저는 성체를 절대로 씹지 말라는 교육도 받았습니다. 하지만 성체라는 것은 음식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고 음식은 마땅히 씹어서 섭취하는 것이 정상입니다. 일부러 예수님 당해보라고 꼭꼭 억지로 씹지 않는 것이라면 성체는 고형 음식물이고 당연히 씹어서 섭취해야 하는 것이지요. 그걸 억지로 녹이라고 하니 별 희한한 에피소드들이 나오는 것입니다. 입천장에 들러붙어서 혼이 났다느니 하는 식이지요.
미사는 의무가 아닙니다. 미사는 우리가 사랑하는 하느님께 나아가는 자리이지요. 매일 매일 미사가 있는데도 더 많이 나가지 못하는 걸 죄송하게 여겨야지 한 주일에 한 번 나가는 걸 억지로 참석하고는 의무 규정을 완료했다고 양심의 불을 끄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됩니다.
(6대 의무/ 주일과 의무축일미사 참례, 매주 금요일 금육과 재의 수요일과 성금요일 단식, 1년에 한 번의 고해성사, 1년에 한 번의 영성체, 교무금 납부, 혼인성사에 관한 혼인법 준수)
사실 이는 교회의 기본 테두리를 둘러준 셈입니다. ‘최소한 이것은 하라’는 것이지요. 헌데 신자들은 ‘이것만 하자’가 되어 버리는 것이 일상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벗어나지 않으면 그 어떤 다른 어둠의 행위를 내면으로 해도 크게 죄스럽지 않다고 여기지요.
미사는 의무가 아닙니다. 미사는 ‘찬미와 감사의 행위’여야 하고, 그러한 행위에 진실하게 참여하는 이상 기쁨이 가득한 행위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미사는 울며 겨자먹기로 가야 하는 의무가 아니라 기쁨이 가득한 우리의 ‘권리’입니다.
한국 신자들의 이 ‘의무규정준수’는 제법 역사가 오래된 것이고 습관으로 굳어버린 것입니다. 아직도 수많은 교리 안에서 ‘신자 유지’를 목적으로 의무사항에 대해서 열을 토해서 가르치고 그것을 어기면 중죄를 저지르는 것으로 가르치고 있지요.
저는 성체를 절대로 씹지 말라는 교육도 받았습니다. 하지만 성체라는 것은 음식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고 음식은 마땅히 씹어서 섭취하는 것이 정상입니다. 일부러 예수님 당해보라고 꼭꼭 억지로 씹지 않는 것이라면 성체는 고형 음식물이고 당연히 씹어서 섭취해야 하는 것이지요. 그걸 억지로 녹이라고 하니 별 희한한 에피소드들이 나오는 것입니다. 입천장에 들러붙어서 혼이 났다느니 하는 식이지요.
미사는 의무가 아닙니다. 미사는 우리가 사랑하는 하느님께 나아가는 자리이지요. 매일 매일 미사가 있는데도 더 많이 나가지 못하는 걸 죄송하게 여겨야지 한 주일에 한 번 나가는 걸 억지로 참석하고는 의무 규정을 완료했다고 양심의 불을 끄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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