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1요한 3,2)
하느님은 사랑이 가득하신 분이시고 사랑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그분의 자녀가 됩니다. 자녀가 된다는 의미는 그분과 함께 머물고 그분의 좋은 것을 모두 누리며 그분의 사랑을 담뿍 받는 존재가 된다는 것입니다. 자녀는 부모를 신뢰합니다. 어떤 일에 있어서든지 부모의 영향력 안에서 힘을 얻습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부모가 지닌 모든 것을 물려받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자녀’입니다.
우리의 자녀됨은 ‘사랑’으로 이루어집니다. 우리는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스스로 그분의 자녀임을 드러냅니다. 이는 특정한 예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예식을 하는 이유는 우리의 인식을 새롭게 하고 그 시작점을 통해서 구체적으로 살기 위해서 하는 것이지 단순히 어느 예식만 받았다고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고 하는 것은 큰 착각입니다. 알면서도 실천하지 않는 이들은 훗날 더 큰 책임을 추궁당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사랑’을 압니다. 사랑이 좋다는 걸 알고 사랑을 해야 한다는 걸 알지요. 그러나 사랑이 쉽다고는 하지 않겠습니다. 사랑은 의지적인 노력이 필요하고 결단을 내리고 실천해야 하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가난한 이가 굶주리게 두면서 ‘기도 하겠습니다.’라고만 한다면 그는 사랑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기도행위’를 하는 사람일 뿐입니다. 사랑한다면 구체적인 실천 사항을 포함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받은 카리스마가 기도 외에는 다른 것을 허용하지 않는 것이라면 마땅히 기도해야 하겠지만 우리가 여전히 세상에 발을 디디고 있는 이상은 구체적인 실천이 필요한 법입니다. 제 아무리 봉쇄 수도원이라도 곁에 함께 살아가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고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익혀야 하는 것이지요.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 그분의 사랑을 한껏 받고 나누어주는 자녀들입니다. 사랑 안에 머물러서 하느님의 자녀의 완성에 이르기까지 쉼없이 노력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은 사랑이 가득하신 분이시고 사랑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그분의 자녀가 됩니다. 자녀가 된다는 의미는 그분과 함께 머물고 그분의 좋은 것을 모두 누리며 그분의 사랑을 담뿍 받는 존재가 된다는 것입니다. 자녀는 부모를 신뢰합니다. 어떤 일에 있어서든지 부모의 영향력 안에서 힘을 얻습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부모가 지닌 모든 것을 물려받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자녀’입니다.
우리의 자녀됨은 ‘사랑’으로 이루어집니다. 우리는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스스로 그분의 자녀임을 드러냅니다. 이는 특정한 예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예식을 하는 이유는 우리의 인식을 새롭게 하고 그 시작점을 통해서 구체적으로 살기 위해서 하는 것이지 단순히 어느 예식만 받았다고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고 하는 것은 큰 착각입니다. 알면서도 실천하지 않는 이들은 훗날 더 큰 책임을 추궁당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사랑’을 압니다. 사랑이 좋다는 걸 알고 사랑을 해야 한다는 걸 알지요. 그러나 사랑이 쉽다고는 하지 않겠습니다. 사랑은 의지적인 노력이 필요하고 결단을 내리고 실천해야 하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가난한 이가 굶주리게 두면서 ‘기도 하겠습니다.’라고만 한다면 그는 사랑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기도행위’를 하는 사람일 뿐입니다. 사랑한다면 구체적인 실천 사항을 포함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받은 카리스마가 기도 외에는 다른 것을 허용하지 않는 것이라면 마땅히 기도해야 하겠지만 우리가 여전히 세상에 발을 디디고 있는 이상은 구체적인 실천이 필요한 법입니다. 제 아무리 봉쇄 수도원이라도 곁에 함께 살아가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고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익혀야 하는 것이지요.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 그분의 사랑을 한껏 받고 나누어주는 자녀들입니다. 사랑 안에 머물러서 하느님의 자녀의 완성에 이르기까지 쉼없이 노력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