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와서 당신을 억지로 모셔다가 임금으로 삼으려 한다는 것을 아시고, 혼자서 다시 산으로 물러가셨다.(요한 6,15)
이 구절은 예수님의 빵의 기적 이후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하늘나라의 은총을 ‘현실적’으로 체험하게 도와 주었습니다. 그들의 배를 채우면서 하늘나라의 부족함 없이 넘치는 은총에 대해서 보여주려고 하셨지요. 헌데 사람들은 ‘배를 채운 그’ 만을 바라본 셈입니다.
사람들은 가르침을 분별할 능력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당장 자신의 주린 배를 현실적으로 채워주는 이를 더욱 간절히 바라고 있었지요. 예수님이 그토록 가르쳤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금세 잊어버린 셈입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이 나라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보다 내밀한 것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은 쉽게 잊어버렸습니다.
가령 상상을 해 봅시다. 예수님이 왕으로 등극합니다. 그리고 왕위에 오른 그분은 당신의 능력으로 시대를 평정하게 될 것입니다. 빵을 먹이고 병자를 치유하고 사람의 마음을 읽는 능력으로 당신은 현세의 모든 권력을 단숨에 휘어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뒤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무엇보다도 당신이 그런 능력을 지닐 수 있었던 것 자체는 ‘하느님 안에’ 머물렀기 때문입니다. 헌데 하느님이 한 인간이 세상을 휘어잡아 권력을 행사하기를 바라셨다면 진작에 그렇게 하지 않으셨을 리가 없습니다. 문제는 그렇게 해서 세상의 나라들을 하나로 통일시킨다 할지라도 인간의 내면의 ‘선과 악’의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라는 분명한 사실에 있습니다.
여전히 인간들은 악을 저지를 것이고, 다만 ‘위대한 통치자’가 있는 동안에는 눈치를 보느라 크게 드러나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온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각 가정마다 자신의 현세적 통치권을 행사할 수는 없을 것이고 결국 불의는 여전히 인간 세상에 판을 치게 됩니다.
참된 다스림은 외적인 억압과 정복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의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었지요.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요한 18,36)
그래서 예수님은 사람들을 피해 물러나십니다. 그분에게는 현세의 임금이 되는 일 따위는 하등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오히려 기피해야 할 대상이었지요. 예수님은 보다 깊은 내면으로부터 당신의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물론 그 내면의 일이라는 것은 당신의 분명한 말씀과 업적으로 드러나는 것이었지요. 예수님은 분명하고도 단호하게 당신의 사명을 수행하셨습니다. 그것이 오늘날까지도 그분의 가르침이 전혀 색이 바래지 않고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숨은 것을 드러내고 있지요.
이 구절은 예수님의 빵의 기적 이후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하늘나라의 은총을 ‘현실적’으로 체험하게 도와 주었습니다. 그들의 배를 채우면서 하늘나라의 부족함 없이 넘치는 은총에 대해서 보여주려고 하셨지요. 헌데 사람들은 ‘배를 채운 그’ 만을 바라본 셈입니다.
사람들은 가르침을 분별할 능력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당장 자신의 주린 배를 현실적으로 채워주는 이를 더욱 간절히 바라고 있었지요. 예수님이 그토록 가르쳤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금세 잊어버린 셈입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이 나라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보다 내밀한 것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은 쉽게 잊어버렸습니다.
가령 상상을 해 봅시다. 예수님이 왕으로 등극합니다. 그리고 왕위에 오른 그분은 당신의 능력으로 시대를 평정하게 될 것입니다. 빵을 먹이고 병자를 치유하고 사람의 마음을 읽는 능력으로 당신은 현세의 모든 권력을 단숨에 휘어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뒤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무엇보다도 당신이 그런 능력을 지닐 수 있었던 것 자체는 ‘하느님 안에’ 머물렀기 때문입니다. 헌데 하느님이 한 인간이 세상을 휘어잡아 권력을 행사하기를 바라셨다면 진작에 그렇게 하지 않으셨을 리가 없습니다. 문제는 그렇게 해서 세상의 나라들을 하나로 통일시킨다 할지라도 인간의 내면의 ‘선과 악’의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라는 분명한 사실에 있습니다.
여전히 인간들은 악을 저지를 것이고, 다만 ‘위대한 통치자’가 있는 동안에는 눈치를 보느라 크게 드러나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온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각 가정마다 자신의 현세적 통치권을 행사할 수는 없을 것이고 결국 불의는 여전히 인간 세상에 판을 치게 됩니다.
참된 다스림은 외적인 억압과 정복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의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었지요.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요한 18,36)
그래서 예수님은 사람들을 피해 물러나십니다. 그분에게는 현세의 임금이 되는 일 따위는 하등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오히려 기피해야 할 대상이었지요. 예수님은 보다 깊은 내면으로부터 당신의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물론 그 내면의 일이라는 것은 당신의 분명한 말씀과 업적으로 드러나는 것이었지요. 예수님은 분명하고도 단호하게 당신의 사명을 수행하셨습니다. 그것이 오늘날까지도 그분의 가르침이 전혀 색이 바래지 않고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숨은 것을 드러내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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