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사는 곳이면 언제나 ‘결함’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리고 이 작은 결함들이 모여서 큰 움직임을 형성하기 시작하면 사회적인 악이 형성됩니다. 작은 불의에 대해서 눈을 돌리기 시작하면 그 결과가 어느새 나의 대문 앞에 버티고 서 있는 것을 체험하게 되지요.
‘나는 아무 나쁜 짓도 하지 않았다’로는 불충분합니다. 문제는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것을 하지 못했다’는 데에 있지요. 당신을 심각한 범죄자라고 고발할 이는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는 사람을 죽인 적도 없고, 엄청난 탈세를 한 적도 없지요. 우리는 소시민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무언가를 거르고 있다면 그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예컨대, 우리는 가난한 이웃을 돌보려 하기보다는 당장 내 생활의 윤택함을 개선하기 위해서만 노력해 왔습니다. 이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별로 문제될 것이 없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문제입니다. 우리가 우리보다 못한 이를 돌보지 않으면 결국 우리가 ‘못한 이’가 될 때, 아니면 나의 가족 구성원 중의 하나가 ‘못한 이’가 될 때에 그 누구도 우리나 그들을 돌보지 않게 될 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니까요.
사실 이 일은 아주 작은 공동체의 범위인 ‘가족’에서부터 시작되고 있는 것입니다. 작은 불의가 일상적으로 행해지는데 ‘내가 한 짓이 아니니 나는 신경쓰지 않겠다’라고 하고 있으면 그 불의는 갈수록 도를 더해가는 셈입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 불의가 견디다 못해 불거져 터져 나오면 그제서야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나는 것인가?’하고 외치는 일이 수도 없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문제는 사실 이미 오래 전부터 예견되어 온 셈이지요.
남편을 소중히 돌보지 않는 아내는 남편의 외도를 준비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아내를 소홀히 하는 남편은 어느 순간 신경질이 도질 아내의 상태를 준비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지요. 헌데 그런 자신의 미미한 행동을 알아 차리거나 반성하기는 커녕, 사건이 터지면 서로 상대를 비난하고 헐뜯는다고 정신이 없습니다.
우리는 지금 우리가 일상적으로 소홀히 하는 것들을 다시 바라보아야 합니다. 바로 거기에 진정한 하늘 나라를 위한 준비과정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우리더러 구세주가 되라고 하신 적이 없습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우리 자신이 되기를 바라셨습니다. 다만, 당신의 뜻에 합당한 우리 자신이 되기를 바라셨지요.
‘나는 아무 나쁜 짓도 하지 않았다’로는 불충분합니다. 문제는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것을 하지 못했다’는 데에 있지요. 당신을 심각한 범죄자라고 고발할 이는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는 사람을 죽인 적도 없고, 엄청난 탈세를 한 적도 없지요. 우리는 소시민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무언가를 거르고 있다면 그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예컨대, 우리는 가난한 이웃을 돌보려 하기보다는 당장 내 생활의 윤택함을 개선하기 위해서만 노력해 왔습니다. 이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별로 문제될 것이 없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문제입니다. 우리가 우리보다 못한 이를 돌보지 않으면 결국 우리가 ‘못한 이’가 될 때, 아니면 나의 가족 구성원 중의 하나가 ‘못한 이’가 될 때에 그 누구도 우리나 그들을 돌보지 않게 될 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니까요.
사실 이 일은 아주 작은 공동체의 범위인 ‘가족’에서부터 시작되고 있는 것입니다. 작은 불의가 일상적으로 행해지는데 ‘내가 한 짓이 아니니 나는 신경쓰지 않겠다’라고 하고 있으면 그 불의는 갈수록 도를 더해가는 셈입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 불의가 견디다 못해 불거져 터져 나오면 그제서야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나는 것인가?’하고 외치는 일이 수도 없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문제는 사실 이미 오래 전부터 예견되어 온 셈이지요.
남편을 소중히 돌보지 않는 아내는 남편의 외도를 준비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아내를 소홀히 하는 남편은 어느 순간 신경질이 도질 아내의 상태를 준비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지요. 헌데 그런 자신의 미미한 행동을 알아 차리거나 반성하기는 커녕, 사건이 터지면 서로 상대를 비난하고 헐뜯는다고 정신이 없습니다.
우리는 지금 우리가 일상적으로 소홀히 하는 것들을 다시 바라보아야 합니다. 바로 거기에 진정한 하늘 나라를 위한 준비과정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우리더러 구세주가 되라고 하신 적이 없습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우리 자신이 되기를 바라셨습니다. 다만, 당신의 뜻에 합당한 우리 자신이 되기를 바라셨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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