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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아저씨

사무원이 저를 찾습니다. 어떤 아저씨가 저를 찾는다고 하면서요. 사무실로 가 보니 어떤 아저씨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 신부님, 도움이 필요합니다.

- 무슨 일이신가요?

- 제가 원래는 라파스에 사는데 여기 일하러 왔다가 사기를 당해서 아무것도 가진 게 없습니다. 제가 생선 요리를 잘 하는 사람인데 저랑 일하기로 계약을 맺은 사람이 저를 속이고 아무것도 남겨두지 않고 날라 버렸습니다.

- 저런, 지금까지는 어떻게 지내시구요?

- 6일동안 떠돌아 다녔습니다.

- 그렇군요. 기억나는 전화번호 있으세요? 집이나 친척이나?

- 제가 당한 일 때문에 아무런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 가톨릭 신자분은 맞으시구요?

- 성당 열심히 다녔습니다. 독실한 신자입니다.

- 어느 성당에 다니셨나요? 신부님 이름 생각나세요?

- 마르틴 신부님이었습니다.

- 본당이 어디지요?

-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만 베르메호에 있습니다.

제가 휴대폰을 꺼내서 베르메호의 본당을 찾아보는 시늉을 했습니다. 그러자 그 아저씨가 조급하게 대답을 합니다. 아마 제가 전화번호를 찾아서 전화를 거는 게 불안했던 모양입니다.

- 아, 지금 생각해보니 개신교 교회였던 것 같군요.

- 그래요? 당황스럽네요. 여기 오시기 전에는 어디 계셨나요?

- 와르네스(우리 동네 옆 동네, 차로 15분 거리)에 있었습니다. 거기서 일하기로 했었거든요.

- 그럼 와르네스에 원래 일하기로 했던 곳은 어딘가요?

- 없습니다. 원래 거기에서 일하기로 했는데 못하게 되었습니다.

- 근데 와르네스의 하고 많은 개신교 교회와 성당을 놔두고 여기까지 오신 이유가 뭐지요?

- 경황이 없는 중에 걷다보니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신부님 조금만 도와주시면 안되겠습니까?

- 죄송합니다. 형제님. 제 분별로는 형제님을 도와드릴 수 없을 것 같네요. 형제님이 저에게 말한 것만으로는 저는 형제님이 정말 어려움에 처해 있다는 것을 믿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저는 사실 많은 분들을 도와드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형제님께는 도움을 드릴 수 없을 것 같습니다.

- 아니, 하다 못해 먹을 것도 얻을 수 없단 말입니까?

- 아, 그건 당장 해 드리지요.

벌떡 일어나서 아저씨를 데리고 성당 앞 가게로 갔습니다. 넉넉한 빵과 음료수를 사 드렸습니다.

- 그럼 축복 가득하시구요. 조심히 돌아가십시오.

저는 아저씨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가시는 걸음을 축복해 드렸지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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