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받는 것이 가장 첫번째 단계입니다. 진정한 사랑을 쏟는 이는 설령 그 사랑을 내치더라도 그는 나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갓난 아기가 아무것도 하지 못하지만 사랑을 전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좋은 예입니다.
인간적으로 사랑받기에 사랑을 나누어주는 것은 다음 단계입니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충만히 받는 이는 마땅히 사랑을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마저도 하지 않는 이들이 많습니다. 자신이 받는 사랑을 당연하게 여기는 이들이지요. 그러나 주변으로 충만한 사랑을 받는 이는 보통은 다른 이들에게도 사랑을 베풉니다. 부모에게 충분히 사랑받은 아이가 다른 이에게 사랑을 베푸는 것이 좋은 예이지요.
사랑이 끊어졌는데 사랑을 게속 나누어주는 것은 그보다 고난이도의 단계입니다. 이제는 딱히 따로 받는 사랑이 없는데도 사랑을 계속 해야 하는 상황이 되는 것이지요. 우리는 그러는 동안 전혀 다른 사랑의 근원을 찾아야 합니다. 사실 사랑을 받지 않고 줄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자신에게 없는 것을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다만 무엇에 사랑받는다고 느끼는가 하는 것은 사람마다 그 수용능력이 다릅니다. 바로 이 시기부터 하느님을 향한 참된 신앙이 눈을 뜨게 됩니다.
마지막 단계는 ‘고통’ 안에서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단계까지 이르는 사람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듭니다. 거의 인간적으로 사랑받고 사랑을 나누는 수준에 머무르지요. 그러나 간혹 자신이 엄청난 고통과 시련 속에 있으면서도 다른 이를 향해서 사랑의 손길을 내어놓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 안에는 엄청난 사랑의 근원이 있어서 모든 이를 밝히는 빛이 됩니다. 그들은 오직 전적으로 하느님에게 의지하는 이들입니다.
단계를 거슬러 갈수록 보다 이성적인 사랑, 이해할 만한 사랑이 되고, 단계를 진행해 나갈수록 도저히 세상의 이성이 깨달을 수 없는 사랑이 진행되어 나갑니다. 예수님의 사랑이 최종단계이지요. ‘죄인을 위한 사랑’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사랑을 이해하기에는 우리의 능력이 너무나 미소한 현실입니다.
인간적으로 사랑받기에 사랑을 나누어주는 것은 다음 단계입니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충만히 받는 이는 마땅히 사랑을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마저도 하지 않는 이들이 많습니다. 자신이 받는 사랑을 당연하게 여기는 이들이지요. 그러나 주변으로 충만한 사랑을 받는 이는 보통은 다른 이들에게도 사랑을 베풉니다. 부모에게 충분히 사랑받은 아이가 다른 이에게 사랑을 베푸는 것이 좋은 예이지요.
사랑이 끊어졌는데 사랑을 게속 나누어주는 것은 그보다 고난이도의 단계입니다. 이제는 딱히 따로 받는 사랑이 없는데도 사랑을 계속 해야 하는 상황이 되는 것이지요. 우리는 그러는 동안 전혀 다른 사랑의 근원을 찾아야 합니다. 사실 사랑을 받지 않고 줄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자신에게 없는 것을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다만 무엇에 사랑받는다고 느끼는가 하는 것은 사람마다 그 수용능력이 다릅니다. 바로 이 시기부터 하느님을 향한 참된 신앙이 눈을 뜨게 됩니다.
마지막 단계는 ‘고통’ 안에서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단계까지 이르는 사람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듭니다. 거의 인간적으로 사랑받고 사랑을 나누는 수준에 머무르지요. 그러나 간혹 자신이 엄청난 고통과 시련 속에 있으면서도 다른 이를 향해서 사랑의 손길을 내어놓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 안에는 엄청난 사랑의 근원이 있어서 모든 이를 밝히는 빛이 됩니다. 그들은 오직 전적으로 하느님에게 의지하는 이들입니다.
단계를 거슬러 갈수록 보다 이성적인 사랑, 이해할 만한 사랑이 되고, 단계를 진행해 나갈수록 도저히 세상의 이성이 깨달을 수 없는 사랑이 진행되어 나갑니다. 예수님의 사랑이 최종단계이지요. ‘죄인을 위한 사랑’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사랑을 이해하기에는 우리의 능력이 너무나 미소한 현실입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