삯꾼은 목자가 아니고 양도 자기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들을 버리고 달아난다. 그러면 이리는 양들을 물어 가고 양 떼를 흩어 버린다. 그는 삯꾼이어서 양들에게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요한 10,12-13)
허용 범위 안에서만 일하려는 이들이 있습니다. 자신에게 의무적으로 주어진 범위가 아니면 손끝하나 움직이지 않으려는 이들이지요. 이들의 직분이 무엇에 근거하고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즉, 이들이 공무원인지, 의사인지, 교사인지, 사제인지 수도자인지, 구역반장인지는 부차적인 문제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들 안에 숨어있는 의도입니다.
자신에게 의무적으로 지워진 범위 외에는 신경쓰지 않으려는 이들을 우리는 관공서에서 흔히 만납니다. 이들은 철저히 자신의 범위 안에서만 일할 뿐입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지요. 월급을 받고 일하는 그들로서는 당연한 모습입니다. 만일 월급을 받고 일하는 사람이 공연히 일을 더 하려고 하다가는 도리어 다른 이들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습니다. 그에게 일을 시키는 주인이 그런 그의 모습에 길들여 질 것이기 때문이고 합당하게 자신의 보수를 받고 정당하게 일하는 사람들의 업무를 과중시킬 것이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목자’의 직분을 가진 사람이 삯꾼처럼 일한다면 큰일입니다. 목자라는 직분은 삯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는 양을 올바로 이해하고 알고 있어야 하는 사람입니다. 즉 양들의 아버지 역할을 하는 것이지요.
아버지가 가정에 머무르는 시간을 정하고 아내와 자녀들과의 관계 안에서 ‘해야 할 일’만 정해 놓았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그 관계는 참으로 냉정하고 차갑고 건조할 것입니다. 그런 아버지는 없기를 바라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목자’들은 존재합니다.
결정적인 순간은 무슨 대단한 모습으로 드러나는게 아닙니다. 게릴라들이 총을 들고 쳐들어와서 목자더러 나오라고 하는 게 아닙니다. 그런 드라마틱한 극적인 사건들이 일어나는 것은 지극히 일부입니다. 보통은 아주 작은 사건으로 드러납니다.
“월요일은 난 죽어도 쉬어야 해.”라고 하는 선교사가 있다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휴식을 보장받아야 하는 건 사실이지만 월요일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영혼들을 구하는데 월요일이라고 해서 예외가 될 수는 없습니다.
이리라는 것은 대단한 위협이 아닙니다. 이리라는 것은 양들을 위협하는 존재, 세상의 도전들입니다. 목자가 조금만 깨어 경계하고 있으면 양들을 보호하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습니다. 하지만 목자가 아닌 삯꾼은 제 몫만 받으면 양들이야 어떻게 되든 상관이 없습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양들을 위협하고 있는데 그 양들을 돌보지 않는 이들이 어찌 목자라 할 수 있겠습니까?
허용 범위 안에서만 일하려는 이들이 있습니다. 자신에게 의무적으로 주어진 범위가 아니면 손끝하나 움직이지 않으려는 이들이지요. 이들의 직분이 무엇에 근거하고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즉, 이들이 공무원인지, 의사인지, 교사인지, 사제인지 수도자인지, 구역반장인지는 부차적인 문제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들 안에 숨어있는 의도입니다.
자신에게 의무적으로 지워진 범위 외에는 신경쓰지 않으려는 이들을 우리는 관공서에서 흔히 만납니다. 이들은 철저히 자신의 범위 안에서만 일할 뿐입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지요. 월급을 받고 일하는 그들로서는 당연한 모습입니다. 만일 월급을 받고 일하는 사람이 공연히 일을 더 하려고 하다가는 도리어 다른 이들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습니다. 그에게 일을 시키는 주인이 그런 그의 모습에 길들여 질 것이기 때문이고 합당하게 자신의 보수를 받고 정당하게 일하는 사람들의 업무를 과중시킬 것이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목자’의 직분을 가진 사람이 삯꾼처럼 일한다면 큰일입니다. 목자라는 직분은 삯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는 양을 올바로 이해하고 알고 있어야 하는 사람입니다. 즉 양들의 아버지 역할을 하는 것이지요.
아버지가 가정에 머무르는 시간을 정하고 아내와 자녀들과의 관계 안에서 ‘해야 할 일’만 정해 놓았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그 관계는 참으로 냉정하고 차갑고 건조할 것입니다. 그런 아버지는 없기를 바라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목자’들은 존재합니다.
결정적인 순간은 무슨 대단한 모습으로 드러나는게 아닙니다. 게릴라들이 총을 들고 쳐들어와서 목자더러 나오라고 하는 게 아닙니다. 그런 드라마틱한 극적인 사건들이 일어나는 것은 지극히 일부입니다. 보통은 아주 작은 사건으로 드러납니다.
“월요일은 난 죽어도 쉬어야 해.”라고 하는 선교사가 있다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휴식을 보장받아야 하는 건 사실이지만 월요일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영혼들을 구하는데 월요일이라고 해서 예외가 될 수는 없습니다.
이리라는 것은 대단한 위협이 아닙니다. 이리라는 것은 양들을 위협하는 존재, 세상의 도전들입니다. 목자가 조금만 깨어 경계하고 있으면 양들을 보호하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습니다. 하지만 목자가 아닌 삯꾼은 제 몫만 받으면 양들이야 어떻게 되든 상관이 없습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양들을 위협하고 있는데 그 양들을 돌보지 않는 이들이 어찌 목자라 할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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