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이라는 것은 문명사회에서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배운 사람으로서 그 합당한 품위를 지니고 있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 교양이라는 것이 자신의 본의를 감추는 가면으로도 얼마든지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을 주의해야 합니다.
볼리비아의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만큼 교양이 있지 못합니다. 별로 배우질 못했지요. 배울 기회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로 인해서 가리고 숨길 수 있는 것이 오히려 부족한 셈이고, 역으로 솔직한 편입니다.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는 것이 바로 드러나지요.
인간의 내면 근본에 자리잡고 있는 ‘의도’가 확실하게 드러나는 셈입니다. 그러나 교양있는 이들은 좋아도 교양으로 가릴 수 있고, 싫어도 교양으로 가릴 수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오히려 더 깊이 숨길 수 있게 됩니다.
마치 자동차에 완충 장치가 있고 없고의 차이와 같습니다. 완충 장치가 있으면 바퀴의 울림이 완화되어 전해지지만 완충 장치가 없으면 그 충격이 그대로 전해지지요. 운전을 하기에는 완충장치가 있는 편이 편하겠지만, 바닥의 상태를 알아야 하는 상황이라면 완충장치는 오히려 가림막이 되는 셈입니다.
사실 우리는 한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알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완충막이 될 수 있는 교양을 필요로 하는 셈입니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하게 알아두어야 할 사항은, 하느님 앞에서는 교양이 크게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당신이 교양 있고 예의 바르게 거짓말을 해도 다 아시는 분이십니다. 하하하.
볼리비아의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만큼 교양이 있지 못합니다. 별로 배우질 못했지요. 배울 기회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로 인해서 가리고 숨길 수 있는 것이 오히려 부족한 셈이고, 역으로 솔직한 편입니다.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는 것이 바로 드러나지요.
인간의 내면 근본에 자리잡고 있는 ‘의도’가 확실하게 드러나는 셈입니다. 그러나 교양있는 이들은 좋아도 교양으로 가릴 수 있고, 싫어도 교양으로 가릴 수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오히려 더 깊이 숨길 수 있게 됩니다.
마치 자동차에 완충 장치가 있고 없고의 차이와 같습니다. 완충 장치가 있으면 바퀴의 울림이 완화되어 전해지지만 완충 장치가 없으면 그 충격이 그대로 전해지지요. 운전을 하기에는 완충장치가 있는 편이 편하겠지만, 바닥의 상태를 알아야 하는 상황이라면 완충장치는 오히려 가림막이 되는 셈입니다.
사실 우리는 한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알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완충막이 될 수 있는 교양을 필요로 하는 셈입니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하게 알아두어야 할 사항은, 하느님 앞에서는 교양이 크게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당신이 교양 있고 예의 바르게 거짓말을 해도 다 아시는 분이십니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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