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을 떠올리면서 우리는 너무 편안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마음의 평화’라는 것이 단골로 등장하는 대답입니다. 마음의 평화라는 것은 참으로 좋은 표현이지만 달리 바라보면 ‘만사 귀찮으니 날 귀찮게 하지 말라’라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평화를 전합니다. 하지만 그분의 제자들은 그 평화를 간직하고 세상에 나가서 무시당하고 심문당하고 투옥당하고 죽기까지 했습니다. 우리는 크나큰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평화라는 것을 단순히 ‘안락함’과 착각하는 것입니다. 평화라는 것이 나라는 존재는 그대로 있고 내 주변이 모조리 바뀌어서 내가 아주 즐거울 수 있고 평온할 수 있는 상태라고 착각하는 것이지요.
가난한 이가 있으면 가난한 지역에 몰아놓고 나오지 못하게 하고, 병든 이가 있으면 병원에 집어넣고 일상 안에서 마주치지 못하게 하고, 장애인이 있으면 시설에 집어넣고 세상으로 나오지 못하게 하고, 노인들이 있으면 노인 요양원에 보내서 내가 그 늙어빠진 모습을 보지 못하게 하면 나는 이제 세상에서 편안해 진다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헌데 그러다가 내가 나중에는 늙고 병들고 가난해질 수도 있다는 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지요. 나 스스로 더 큰 불안감을 조성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나도 늙으면 스스로 그런 요양 시설에 기꺼이 들어가고 싶어할 거라고 착각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정작 늙으면 죽어도 거기는 안들어간다고 떼를 쓰기 시작하지요.
평화라는 것은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전까지는 우리에게 평화라는 것은 요원한 일입니다. 다만 하느님의 자녀들은 마음 깊은 곳에 진실한 평화를 간직하고 있지요.
평화를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합니다. 평화롭지 못한 모든 것들에 대항해서 하느님의 빛을 전해야 하니까요. 그렇지만 이 말이 나가서 투쟁하고 싸우라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는 맞서 싸워야 하긴 하지만 세상이 사용하는 방식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맞서 싸워야 합니다. 우리는 사랑과 인내와 겸손과 기도로 싸우게 될 것입니다. 세상은 그런 우리를 어리석다고 말하게 될 것이구요. 심지어 같은 신앙인들 가운데에서는 그런 우리를 수치스럽다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는 사람은 이미 그런 삶을 살고 있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평화를 전합니다. 하지만 그분의 제자들은 그 평화를 간직하고 세상에 나가서 무시당하고 심문당하고 투옥당하고 죽기까지 했습니다. 우리는 크나큰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평화라는 것을 단순히 ‘안락함’과 착각하는 것입니다. 평화라는 것이 나라는 존재는 그대로 있고 내 주변이 모조리 바뀌어서 내가 아주 즐거울 수 있고 평온할 수 있는 상태라고 착각하는 것이지요.
가난한 이가 있으면 가난한 지역에 몰아놓고 나오지 못하게 하고, 병든 이가 있으면 병원에 집어넣고 일상 안에서 마주치지 못하게 하고, 장애인이 있으면 시설에 집어넣고 세상으로 나오지 못하게 하고, 노인들이 있으면 노인 요양원에 보내서 내가 그 늙어빠진 모습을 보지 못하게 하면 나는 이제 세상에서 편안해 진다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헌데 그러다가 내가 나중에는 늙고 병들고 가난해질 수도 있다는 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지요. 나 스스로 더 큰 불안감을 조성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나도 늙으면 스스로 그런 요양 시설에 기꺼이 들어가고 싶어할 거라고 착각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정작 늙으면 죽어도 거기는 안들어간다고 떼를 쓰기 시작하지요.
평화라는 것은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전까지는 우리에게 평화라는 것은 요원한 일입니다. 다만 하느님의 자녀들은 마음 깊은 곳에 진실한 평화를 간직하고 있지요.
평화를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합니다. 평화롭지 못한 모든 것들에 대항해서 하느님의 빛을 전해야 하니까요. 그렇지만 이 말이 나가서 투쟁하고 싸우라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는 맞서 싸워야 하긴 하지만 세상이 사용하는 방식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맞서 싸워야 합니다. 우리는 사랑과 인내와 겸손과 기도로 싸우게 될 것입니다. 세상은 그런 우리를 어리석다고 말하게 될 것이구요. 심지어 같은 신앙인들 가운데에서는 그런 우리를 수치스럽다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는 사람은 이미 그런 삶을 살고 있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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