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징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요한 6,26-27)
사람들은 기적을 은근히 기다립니다. 헌데 그들이 바라는 기적이라는 것은 그 내면의 진정한 가치를 지닌 기적이 아닙니다. 다만 그들의 호기심을 채워줄 기적을 말하는 것이지요.
그들이 말하는 기적은 다음과 같은 것들입니다. 피눈물을 흘리는 성모상, 하늘에 나타나는 구름, 벽에 나타난 예수님의 형상, 불치병의 치유 등등이지요. 그들은 그러한 신기한 기현상을 보고 나면 ‘기적이 일어났다’고 호들갑을 떨곤 합니다.
예수님 시대에 사람들은 빵의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수천배로 늘어난 빵으로 자신들의 배가 너끈히 채워지는 경험을 했지요. 이는 실로 충격이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헌데 사람들은 그 안에 숨어있는 참된 의미에 대해서 성찰하지 못했습니다. 왜 빵을 많게 하신 것인지 한 단계 더 나아가서 생각할 수가 없었지요.
예를 들어 볼까요. 한 사람이 ‘치유’를 받았다고 생각을 해 봅시다. 당장 사람들은 그 치유에 집중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 치유의 근본 목적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지 않고 과연 어떤 치유가 일어났으며 얼마나 불치병이었는지를 관심을 가질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세상의 호기심이니까요. 하지만 하느님이 뜻은 전혀 다른 쪽으로 흘러갑니다. 그가 치유를 받은 이유는 그가 받은 사랑의 선물을 바탕으로 이 세상에서 하느님의 뜻을 전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헌데 사람들은 ‘하느님의 뜻’은 전혀 생각지 않고 오직 치유의 기적의 ‘방법론’을 연구하기 시작하지요.
루르드의 성수를 대하는 우리의 마음을 봅시다. 마치 루르드의 물이 만병 통치약이라도 되는 듯이 들고 와서 마시곤 합니다. 하지만 그 성수의 진정한 의미를 생각해 보지는 않지요. 루르드에서 무슨 일이 있었고 성모님이 무엇을 원하셨는지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그저 물만 떠와서 아픈 누군가가 마시면 어떻게든 개선 효과를 볼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성수는 ‘믿음’을 바탕으로 하지 않으면 아무런 효력이 없습니다. 헌데 누군가가 여전히 남을 증오하고 미워하는 마음을 지닌 채로 자신의 질병을 치유하겠다고 루르드의 물을 1리터를 마신다고 한들 뭔가가 나아질 리가 없다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이치이지요.
대부분의 경우에 사람들은 육을 채우는 빵을 찾을 뿐입니다. 그리고 영원한 생명을 주는 빵은 거의 무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우리에게 진정으로 선물하고 싶었던 것은 육신의 생명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이었습니다. 이를 잊지 말아야 하는데... 잊고 지내는 이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사람들은 기적을 은근히 기다립니다. 헌데 그들이 바라는 기적이라는 것은 그 내면의 진정한 가치를 지닌 기적이 아닙니다. 다만 그들의 호기심을 채워줄 기적을 말하는 것이지요.
그들이 말하는 기적은 다음과 같은 것들입니다. 피눈물을 흘리는 성모상, 하늘에 나타나는 구름, 벽에 나타난 예수님의 형상, 불치병의 치유 등등이지요. 그들은 그러한 신기한 기현상을 보고 나면 ‘기적이 일어났다’고 호들갑을 떨곤 합니다.
예수님 시대에 사람들은 빵의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수천배로 늘어난 빵으로 자신들의 배가 너끈히 채워지는 경험을 했지요. 이는 실로 충격이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헌데 사람들은 그 안에 숨어있는 참된 의미에 대해서 성찰하지 못했습니다. 왜 빵을 많게 하신 것인지 한 단계 더 나아가서 생각할 수가 없었지요.
예를 들어 볼까요. 한 사람이 ‘치유’를 받았다고 생각을 해 봅시다. 당장 사람들은 그 치유에 집중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 치유의 근본 목적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지 않고 과연 어떤 치유가 일어났으며 얼마나 불치병이었는지를 관심을 가질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세상의 호기심이니까요. 하지만 하느님이 뜻은 전혀 다른 쪽으로 흘러갑니다. 그가 치유를 받은 이유는 그가 받은 사랑의 선물을 바탕으로 이 세상에서 하느님의 뜻을 전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헌데 사람들은 ‘하느님의 뜻’은 전혀 생각지 않고 오직 치유의 기적의 ‘방법론’을 연구하기 시작하지요.
루르드의 성수를 대하는 우리의 마음을 봅시다. 마치 루르드의 물이 만병 통치약이라도 되는 듯이 들고 와서 마시곤 합니다. 하지만 그 성수의 진정한 의미를 생각해 보지는 않지요. 루르드에서 무슨 일이 있었고 성모님이 무엇을 원하셨는지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그저 물만 떠와서 아픈 누군가가 마시면 어떻게든 개선 효과를 볼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성수는 ‘믿음’을 바탕으로 하지 않으면 아무런 효력이 없습니다. 헌데 누군가가 여전히 남을 증오하고 미워하는 마음을 지닌 채로 자신의 질병을 치유하겠다고 루르드의 물을 1리터를 마신다고 한들 뭔가가 나아질 리가 없다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이치이지요.
대부분의 경우에 사람들은 육을 채우는 빵을 찾을 뿐입니다. 그리고 영원한 생명을 주는 빵은 거의 무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우리에게 진정으로 선물하고 싶었던 것은 육신의 생명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이었습니다. 이를 잊지 말아야 하는데... 잊고 지내는 이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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