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을 저지르는 자는 누구나 빛을 미워하고 빛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요한 3,20)
여기서 말하는 빛은 대낮의 빛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말하는 빛은 ‘영적인 빛’ 즉, 선과 진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악을 저지르는 이들의 특징은 선과 진리를 역겨워한다는 데에 있습니다.
그럼 선과 진리는 무엇입니까? 뭔가 엄청나고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이런 예를 들 수 있습니다. 주일학교에 다니는 아이가 술에 쩔어서 집에 늦게 들어오는 아빠를 보고 ‘아빠, 술냄새나. 주일학교 선생님이 술취하는 사람은 바르지 못한 사람이라고 했는데 아빠는 왜 그렇게 술을 많이 먹어?’라고 말을 하면 아빠는 부끄러워하기는 커녕 버르장머리 없는 녀석이라고 도리어 화를 내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이가 말하는 빛을 받아들일 수 없는 상태에 있는 것이지요.
진리와 선의 빛은 그리 멀리 있지 않습니다. 어느 특별한 경우에 다가오는 것이 아닙니다. 진리와 선의 빛은 지극히 우리 가까이에 머물러 있고 우리를 향해 자신의 빛줄기를 드러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에 대해서 저마다의 반응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자녀를 타이르는 부모의 빛, 남편에게 조언하는 아내의 빛, 엇나간 마음을 지닌 친구에게 충언하는 진실한 친구의 빛... 이 모든 빛 안에서 우리는 선택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장님인 이들, 세상의 자녀들인 이들은 자신의 행동이 악하기에 빛을 향해서 나아갈 능력을 상실한 셈이지요.
악을 저지르는 것이 꼭 살인을 해야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악은 하느님에게서 멀어지는 모든 행위를 말합니다. 사소한 말이라도 사악한 의도에서 나온 것이면 악이 될 수 있습니다. 그와 반대의 것도 충분히 성립을 합니다. 우리의 선한 의도에서 나온 것이면 아주 소박한 인사라도 큰 선이 될 수 있습니다. 특히 인사를 나누기 힘든 그에게 의지적으로 다가서는 사랑의 행위는 하느님에게 큰 칭찬을 받게 될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빛은 대낮의 빛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말하는 빛은 ‘영적인 빛’ 즉, 선과 진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악을 저지르는 이들의 특징은 선과 진리를 역겨워한다는 데에 있습니다.
그럼 선과 진리는 무엇입니까? 뭔가 엄청나고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이런 예를 들 수 있습니다. 주일학교에 다니는 아이가 술에 쩔어서 집에 늦게 들어오는 아빠를 보고 ‘아빠, 술냄새나. 주일학교 선생님이 술취하는 사람은 바르지 못한 사람이라고 했는데 아빠는 왜 그렇게 술을 많이 먹어?’라고 말을 하면 아빠는 부끄러워하기는 커녕 버르장머리 없는 녀석이라고 도리어 화를 내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이가 말하는 빛을 받아들일 수 없는 상태에 있는 것이지요.
진리와 선의 빛은 그리 멀리 있지 않습니다. 어느 특별한 경우에 다가오는 것이 아닙니다. 진리와 선의 빛은 지극히 우리 가까이에 머물러 있고 우리를 향해 자신의 빛줄기를 드러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에 대해서 저마다의 반응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자녀를 타이르는 부모의 빛, 남편에게 조언하는 아내의 빛, 엇나간 마음을 지닌 친구에게 충언하는 진실한 친구의 빛... 이 모든 빛 안에서 우리는 선택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장님인 이들, 세상의 자녀들인 이들은 자신의 행동이 악하기에 빛을 향해서 나아갈 능력을 상실한 셈이지요.
악을 저지르는 것이 꼭 살인을 해야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악은 하느님에게서 멀어지는 모든 행위를 말합니다. 사소한 말이라도 사악한 의도에서 나온 것이면 악이 될 수 있습니다. 그와 반대의 것도 충분히 성립을 합니다. 우리의 선한 의도에서 나온 것이면 아주 소박한 인사라도 큰 선이 될 수 있습니다. 특히 인사를 나누기 힘든 그에게 의지적으로 다가서는 사랑의 행위는 하느님에게 큰 칭찬을 받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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