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보내는 이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맞아들이는 것이고, 나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맞아들이는 것이다. (요한 13,20)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가 어떤 말을 하고 어떤 일을 하는가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가 어떤 내면을 지니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내내 돈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돈에 관심이 없을 리가 없고, 내내 이성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이성에 관심이 없을리가 없습니다. 행동에서는 더한 진실이 드러납니다. 부유한 이와 머물러 어울리길 좋아하고 고급 레스토랑에 가는 것을 낙으로 삼는 이가 가난한 이를 사랑한다고 떠들어봐야 소용 없는 일이지요.
주님에게서 파견된 자를 분별하는 것은 분명 쉬운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속이는 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진정한 사명에는 사실 큰 관심이 없지만 예수의 이름이 먹히는 동안 그 이름을 들먹이면서 선한 척 행동하는 사람들입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먹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그 일을 할 뿐이지요. 그리고 사람들이 쉽게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로 교묘하게 그 일을 합니다. 그러니 그들을 자세히 관찰한다고 해서 뭔가 눈에 띄게 보이는 건 아닙니다.
우리는 과연 누구를 따라야 하고 누구를 믿어야 하는 걸까요? 저마다 자신이 옳다고 외쳐대고 있으니 말입니다. 이런 때일수록 예수님에게 돌아가는 것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그분의 진정한 가르침의 핵심을 따라서 아는 바대로 실천하고 살아가는 것이지요.
신비적인 부분, 초자연적인 부분도 놓쳐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기도’라는 좋은 수단이 있고 ‘성령’이라는 삼위일체의 한 분을 모시고 있습니다. 기도를 통해서 하느님이 우리의 청을 들으시고 성령께서는 우리들을 통해서 일하신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선을 향해 나아가는 이는 그것을 잘 인지하고 있으며, 반대로 악을 향해 나아가는 이도 자신이 저지르는 짓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선한 의도를 믿고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며 인도하시는 하느님을 잊지 않으면 됩니다.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가 어떤 말을 하고 어떤 일을 하는가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가 어떤 내면을 지니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내내 돈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돈에 관심이 없을 리가 없고, 내내 이성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이성에 관심이 없을리가 없습니다. 행동에서는 더한 진실이 드러납니다. 부유한 이와 머물러 어울리길 좋아하고 고급 레스토랑에 가는 것을 낙으로 삼는 이가 가난한 이를 사랑한다고 떠들어봐야 소용 없는 일이지요.
주님에게서 파견된 자를 분별하는 것은 분명 쉬운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속이는 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진정한 사명에는 사실 큰 관심이 없지만 예수의 이름이 먹히는 동안 그 이름을 들먹이면서 선한 척 행동하는 사람들입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먹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그 일을 할 뿐이지요. 그리고 사람들이 쉽게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로 교묘하게 그 일을 합니다. 그러니 그들을 자세히 관찰한다고 해서 뭔가 눈에 띄게 보이는 건 아닙니다.
우리는 과연 누구를 따라야 하고 누구를 믿어야 하는 걸까요? 저마다 자신이 옳다고 외쳐대고 있으니 말입니다. 이런 때일수록 예수님에게 돌아가는 것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그분의 진정한 가르침의 핵심을 따라서 아는 바대로 실천하고 살아가는 것이지요.
신비적인 부분, 초자연적인 부분도 놓쳐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기도’라는 좋은 수단이 있고 ‘성령’이라는 삼위일체의 한 분을 모시고 있습니다. 기도를 통해서 하느님이 우리의 청을 들으시고 성령께서는 우리들을 통해서 일하신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선을 향해 나아가는 이는 그것을 잘 인지하고 있으며, 반대로 악을 향해 나아가는 이도 자신이 저지르는 짓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선한 의도를 믿고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며 인도하시는 하느님을 잊지 않으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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