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일과 목요일에는 어떻게든 사무실에 죽치고 앉아 있습니다. 특별히 급한 용무가 없는 이상은 그렇게 합니다. 헌데 오늘은 용무가 하나 생겼네요. 장례가 생겼습니다. 헌데 장례가 난 곳이 제 본당 구역이 아닙니다.
“오늘은 가 드릴께요. 제가 안타까우니까요. 하지만 앞으로는 본당 신부님께 청하셔야 해요. 여러분들이 머무는 곳의 본당은 여기가 아니라 OOO신부님이 있는 본당이에요. 앞으로는 그리로 가서 예식을 청하도록 하세요.”
가톨릭 교회는 ‘속지주의’입니다. 자신이 속한 곳의 본당을 가는 것이 원칙이지요. 이는 신자들의 편의를 위함입니다. 가톨릭의 특징은 ‘보편성’이라는 것이고 어딜 가든지 자신이 머무는 곳의 성당에 나아가게 하기 위함이지요. 하지만 구획이 잘못 나눠지면 더 가까운 본당이 있는데도 자신이 속한 본당이 아닌 경우가 있습니다. 더군다나 가톨릭의 구획 개념이 없는 신자분들은 그런 면에서 혼란스러워 하지요. 거기에 원래 자신이 속한 본당의 사목자가 크게 신자들을 돌보지 않는 경우라면 더 안타까운 일이 속출합니다.
가톨릭이 다른 교회처럼 될 가능성은 아직 없습니다. 즉 사목자의 역량에 따라서 교회가 커지거나 작아지거나 하는 식의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가톨릭 교회는 정해진 구역 안에서 일할 뿐입니다. 속된 말로 소위 말하는 ‘나오바리’가 있는 것지요. 그러나 때로는 선을 넘어야 할 필요도 있습니다. 안식일이 사람의 주인이 아니라, 사람이 안식일의 주인이니까요. 그러나 이런 문제가 계속된다면 교회 당국자를 만나 정돈을 하는 것도 필요한 일이겠지요. 나중에 주교님 만나러 가야겠습니다. ㅎㅎㅎ
“오늘은 가 드릴께요. 제가 안타까우니까요. 하지만 앞으로는 본당 신부님께 청하셔야 해요. 여러분들이 머무는 곳의 본당은 여기가 아니라 OOO신부님이 있는 본당이에요. 앞으로는 그리로 가서 예식을 청하도록 하세요.”
가톨릭 교회는 ‘속지주의’입니다. 자신이 속한 곳의 본당을 가는 것이 원칙이지요. 이는 신자들의 편의를 위함입니다. 가톨릭의 특징은 ‘보편성’이라는 것이고 어딜 가든지 자신이 머무는 곳의 성당에 나아가게 하기 위함이지요. 하지만 구획이 잘못 나눠지면 더 가까운 본당이 있는데도 자신이 속한 본당이 아닌 경우가 있습니다. 더군다나 가톨릭의 구획 개념이 없는 신자분들은 그런 면에서 혼란스러워 하지요. 거기에 원래 자신이 속한 본당의 사목자가 크게 신자들을 돌보지 않는 경우라면 더 안타까운 일이 속출합니다.
가톨릭이 다른 교회처럼 될 가능성은 아직 없습니다. 즉 사목자의 역량에 따라서 교회가 커지거나 작아지거나 하는 식의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가톨릭 교회는 정해진 구역 안에서 일할 뿐입니다. 속된 말로 소위 말하는 ‘나오바리’가 있는 것지요. 그러나 때로는 선을 넘어야 할 필요도 있습니다. 안식일이 사람의 주인이 아니라, 사람이 안식일의 주인이니까요. 그러나 이런 문제가 계속된다면 교회 당국자를 만나 정돈을 하는 것도 필요한 일이겠지요. 나중에 주교님 만나러 가야겠습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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