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저녁 청년 미사때에는 강론을 이렇게 시작했습니다.
“사실 저는 조금 슬픕니다. 왜냐면 여기 모인 수많은 청년들이 머지 않아 같은 오류를 반복할 걸 충분히 예상할 수 있거든요. 저마다 지금의 어른들이 이미 겪은 문제를 다시 겪게 될 것입니다.
아버지가 술을 마시고 집에 들어와서 문제가 생기는 것을 충분히 보았음에도 여러분들 중에 누구는 또 술을 마시고 집에 들어가 아내와 아이들을 슬프게 할 것입니다. 이미 아버지나 어머니 중의 한 쪽이 다른 짝을 찾아 떠나서 고통받는 것을 체험했음에도 여러분들은 훗날 자신의 배우자를 두고 또 다른 사랑을 탐내기 시작할 것입니다. 이런 수많은 일들이 지금도 실제로 일어나고 있고 또 앞으로도 충분히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헌데 안타까운 것은 제가 그런 일들에 대한 경고를 수도없이 했다는 데에 있지요.
알면서도 같은 행위를 반복하는 사람을 두고 ‘바보’라고 합니다. 자신의 머리를 망치로 때리면 아픈데도 또 시간이 잠시 흘러 그걸 잊고서는 망치로 자신의 머리를 때리는 사람을 두고 ‘정신나간 사람’이라고 하지요. 우리는 그런 사람이 앞에 있으면 보고 웃을 줄 알면서도 실제로 우리가 그런 사람이라는 자각은 하지 못하고 있는 셈입니다.”
사실이 그러하니 이미 청년들 중에서는 자신의 친구들과 어울려 술을 즐기기 시작한 아이들이 있었고, 이미 자신이 사귀는 여자친구가 있는데도 다른 여자아이와 밀담을 나누는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모두 훗날에는 불행을 조장할 준비를 하고 있는 셈이었지요. 결과가 뻔히 보이는 일에 저마다 마음을 다해 헌신하고 있으니 그런 그들을 바라보는 마음이 슬프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또다시 미소를 보였습니다. 그리고 마무리는 언제나 마찬가지였지요.
“여러분, 저마다 자신이 원하는 길을 가게 됩니다. 그 길이 여러분들이 원하는 길이라면 가는 수 밖에요. 그러나 제가 여러분에게 한 말을 잊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섭리는 단순히 ‘지금’을 바라보지 않기 때문에 제 말을 간직한 여러분들은 그런 슬픈 일들이 있고 나서 제가 한 말을 떠올리고 다시 돌아오려고 노력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 일이 일어나기 전에 예방할 수 있다면 얼마나 더 좋을까요? 그런 일들이 있기 전에 일을 예방하고 미리 하느님 앞에 의로운 삶을 이루어 나갈 수 있으면 얼마나 더 좋겠습니까? 하지만 일어날 일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은 그때가 되어서 울면서 저를 찾아와 이를 어떻게 하느냐고 묻게 될 것입니다. 그 때가 너무 늦지 않기를 바랍니다.”
“사실 저는 조금 슬픕니다. 왜냐면 여기 모인 수많은 청년들이 머지 않아 같은 오류를 반복할 걸 충분히 예상할 수 있거든요. 저마다 지금의 어른들이 이미 겪은 문제를 다시 겪게 될 것입니다.
아버지가 술을 마시고 집에 들어와서 문제가 생기는 것을 충분히 보았음에도 여러분들 중에 누구는 또 술을 마시고 집에 들어가 아내와 아이들을 슬프게 할 것입니다. 이미 아버지나 어머니 중의 한 쪽이 다른 짝을 찾아 떠나서 고통받는 것을 체험했음에도 여러분들은 훗날 자신의 배우자를 두고 또 다른 사랑을 탐내기 시작할 것입니다. 이런 수많은 일들이 지금도 실제로 일어나고 있고 또 앞으로도 충분히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헌데 안타까운 것은 제가 그런 일들에 대한 경고를 수도없이 했다는 데에 있지요.
알면서도 같은 행위를 반복하는 사람을 두고 ‘바보’라고 합니다. 자신의 머리를 망치로 때리면 아픈데도 또 시간이 잠시 흘러 그걸 잊고서는 망치로 자신의 머리를 때리는 사람을 두고 ‘정신나간 사람’이라고 하지요. 우리는 그런 사람이 앞에 있으면 보고 웃을 줄 알면서도 실제로 우리가 그런 사람이라는 자각은 하지 못하고 있는 셈입니다.”
사실이 그러하니 이미 청년들 중에서는 자신의 친구들과 어울려 술을 즐기기 시작한 아이들이 있었고, 이미 자신이 사귀는 여자친구가 있는데도 다른 여자아이와 밀담을 나누는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모두 훗날에는 불행을 조장할 준비를 하고 있는 셈이었지요. 결과가 뻔히 보이는 일에 저마다 마음을 다해 헌신하고 있으니 그런 그들을 바라보는 마음이 슬프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또다시 미소를 보였습니다. 그리고 마무리는 언제나 마찬가지였지요.
“여러분, 저마다 자신이 원하는 길을 가게 됩니다. 그 길이 여러분들이 원하는 길이라면 가는 수 밖에요. 그러나 제가 여러분에게 한 말을 잊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섭리는 단순히 ‘지금’을 바라보지 않기 때문에 제 말을 간직한 여러분들은 그런 슬픈 일들이 있고 나서 제가 한 말을 떠올리고 다시 돌아오려고 노력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 일이 일어나기 전에 예방할 수 있다면 얼마나 더 좋을까요? 그런 일들이 있기 전에 일을 예방하고 미리 하느님 앞에 의로운 삶을 이루어 나갈 수 있으면 얼마나 더 좋겠습니까? 하지만 일어날 일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은 그때가 되어서 울면서 저를 찾아와 이를 어떻게 하느냐고 묻게 될 것입니다. 그 때가 너무 늦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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