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떤 주제이든지 천상의 것을 먼저 생각하기보다 지상의 것을 먼저 걱정합니다. 동정자의 삶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동정자의 삶 안에서 얻게 될 천상적 가치들, 즉 하느님에게 예비된 삶에 대해서 감탄하고 그들의 복된 고독과 헌신의 삶에 대해서 경탄하기 이전에, 우리는 그들의 지상적 삶, 즉 ‘어떻게 섹스도 안하고 혼자 살 수 있지?’ 따위를 걱정하지요. 이는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니 우리의 생각은 아직 지상에 매여 있기 때문입니다.
가끔 접하게 되는 성인들의 삶에서 그들이 천상적 사정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때에 우리의 정신은 자연히 닫혀 있는 상태로 머무르기 때문에 그러한 글들에 대한 이해력도 닫히게 되는 것입니다. 오히려 반대로 그들의 구체적인 삶의 모습이나 그들이 행한 ‘신기한 일들’이 더 관심이 가는 것이지요. 비오 신부님이 여전히 유명한 이유는 그분의 성체성사와 고해성사에 대한 열정, 그리고 하느님과의 진실한 친분 관계가 아니라, 아직도 그분의 손발의 신기한 상처를 기억하는 이들이 더 많습니다.
우리의 메마른 정신은 천상의 사정으로 다가갈 준비가 아직 되어 있지 않은데도 일부 신앙인들은 자신이 단순히 책을 많이 읽었다는 것을 자부심으로 내세우며 자신의 지식이 굉장히 많다고 억지를 부립니다. 그 또한 교만으로 다가가는 지름길이라는 것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지요.
우리의 정신은 여전히 지상에 매여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선호도가 분명히 차이가 나지요. 그러나 하느님의 신비는 지상의 것을 통해서라도 우리를 당신에게 이끄시려고 노력하십니다. 처음부터 천상적 결심으로 신학교에 들어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저 신부님이 멋있어 보이고 뭔가 좋은 게 있을 것 같아서 들어가는 거지요. 수도원에 입회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누구도 수도원 안에서 사소한 일에 마음 아파하며 힘든 공동체 생활을 하려고 들어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처음엔 누구나 수녀님이 되는 것에 대한 일종의 공상을 품고 들어가는 거지요.
가끔 접하게 되는 성인들의 삶에서 그들이 천상적 사정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때에 우리의 정신은 자연히 닫혀 있는 상태로 머무르기 때문에 그러한 글들에 대한 이해력도 닫히게 되는 것입니다. 오히려 반대로 그들의 구체적인 삶의 모습이나 그들이 행한 ‘신기한 일들’이 더 관심이 가는 것이지요. 비오 신부님이 여전히 유명한 이유는 그분의 성체성사와 고해성사에 대한 열정, 그리고 하느님과의 진실한 친분 관계가 아니라, 아직도 그분의 손발의 신기한 상처를 기억하는 이들이 더 많습니다.
우리의 메마른 정신은 천상의 사정으로 다가갈 준비가 아직 되어 있지 않은데도 일부 신앙인들은 자신이 단순히 책을 많이 읽었다는 것을 자부심으로 내세우며 자신의 지식이 굉장히 많다고 억지를 부립니다. 그 또한 교만으로 다가가는 지름길이라는 것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지요.
우리의 정신은 여전히 지상에 매여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선호도가 분명히 차이가 나지요. 그러나 하느님의 신비는 지상의 것을 통해서라도 우리를 당신에게 이끄시려고 노력하십니다. 처음부터 천상적 결심으로 신학교에 들어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저 신부님이 멋있어 보이고 뭔가 좋은 게 있을 것 같아서 들어가는 거지요. 수도원에 입회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누구도 수도원 안에서 사소한 일에 마음 아파하며 힘든 공동체 생활을 하려고 들어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처음엔 누구나 수녀님이 되는 것에 대한 일종의 공상을 품고 들어가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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