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미 말하였는데도 너희는 믿지 않는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하는 일들이 나를 증언한다. 그러나 너희는 믿지 않는다. 너희가 내 양이 아니기 때문이다. (요한 10,25-26)
한 과학 연구원이 아침 토크쇼에 나와서 자신이 연구한 제품을 소개하고 그 제품에 대한 과학적 근거를 제시합니다. 수많은 이들이 그 말을 신뢰할 것이고 행여나 그것이 어떤 식품이라면 불티나게 팔려나가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들은 그 연구원이 말하는 것을 모두 이해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과학의 힘’을 믿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났으니 과거 원자력이 개발된 지 얼마 되지 않을 때에 사람들은 빛나는 그 물을 엄청난 효험이 있는 약으로 생각하고 열심히 사서 마셨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믿고 싶은 것을 믿는 것 뿐입니다. 그 대상을 올바로 분별해서 믿는 게 아니지요. 우리가 믿기 싫다고 생각하는 것은 모든 지성을 총동원해서라도 거부하기 시작합니다. 반대로 우리가 믿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것을 믿을 이유를 모든 곳에서 찾아내지요.
제가 어린 시절만 해도 유에프오가 유행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어떤 과학적 근거든 끌어와서 유에프오를 실존하는 것으로 만들었지요. 대부분의 사진은 조작된 것이었음에도 그 시절이니까 가능한 이야기였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계를 넘어서 다른 존재에 우리와 같은 지성의 존재가 있을 가능성을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무엇에 마음을 쓰느냐 하는 것에 따라서 그것이 그 시절의 화두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는 유에프오에 대해서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때그때마다 주제들이 떠오르고 그리고 그런 주제들을 얼마간의 우리의 관심을 끈 후에 다시 지나가 버리고 맙니다. 그리고 그 수많은 주제 가운데 하나처럼 ‘신앙’의 문제가 있고 ‘예수 그리스도’의 문제가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런 주제들도 다른 여느 주제들처럼 잠깐 반짝하고 우리의 관심을 끌다가 사라져버리고 맙니다. 그리고는 마치 우리가 그 주제를 이미 다루었으니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착각하지요.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습니다. 믿을 수 없어서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는 ‘관심이 없어서’ 믿지 않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성당을 다닌다고 다 예수님의 양이라는 생각은 큰 착각입니다. 성당을 다니는 종교적 활동을 충실히 하는 사람과 진정한 믿음에서 우러나오는 신앙의 활동을 충실하 하는 사람은 분명히 다른 양상을 보입니다. 종교적 충실도가 뛰어난 사람은 독선적이고 교만하고 이기적인 구원관을 지니고 있는 반면, 신앙적 충실도가 뛰어난 사람은 그 삶 자체에서 빛이 납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십자가, 그리고 부활에 대해서 들었지만 그것을 믿기까지는 아직 참으로 요원합니다.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 실천해야 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우리가 거기에 신경을 쓰기에는 세상에는 우리가 ‘믿을 만한’ 정보들이 너무나 넘쳐나는 판입니다.
그들이 들어도 관심이 없고 믿지 못하는 것은... 그들이 주님의 양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한 과학 연구원이 아침 토크쇼에 나와서 자신이 연구한 제품을 소개하고 그 제품에 대한 과학적 근거를 제시합니다. 수많은 이들이 그 말을 신뢰할 것이고 행여나 그것이 어떤 식품이라면 불티나게 팔려나가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들은 그 연구원이 말하는 것을 모두 이해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과학의 힘’을 믿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났으니 과거 원자력이 개발된 지 얼마 되지 않을 때에 사람들은 빛나는 그 물을 엄청난 효험이 있는 약으로 생각하고 열심히 사서 마셨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믿고 싶은 것을 믿는 것 뿐입니다. 그 대상을 올바로 분별해서 믿는 게 아니지요. 우리가 믿기 싫다고 생각하는 것은 모든 지성을 총동원해서라도 거부하기 시작합니다. 반대로 우리가 믿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것을 믿을 이유를 모든 곳에서 찾아내지요.
제가 어린 시절만 해도 유에프오가 유행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어떤 과학적 근거든 끌어와서 유에프오를 실존하는 것으로 만들었지요. 대부분의 사진은 조작된 것이었음에도 그 시절이니까 가능한 이야기였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계를 넘어서 다른 존재에 우리와 같은 지성의 존재가 있을 가능성을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무엇에 마음을 쓰느냐 하는 것에 따라서 그것이 그 시절의 화두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는 유에프오에 대해서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때그때마다 주제들이 떠오르고 그리고 그런 주제들을 얼마간의 우리의 관심을 끈 후에 다시 지나가 버리고 맙니다. 그리고 그 수많은 주제 가운데 하나처럼 ‘신앙’의 문제가 있고 ‘예수 그리스도’의 문제가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런 주제들도 다른 여느 주제들처럼 잠깐 반짝하고 우리의 관심을 끌다가 사라져버리고 맙니다. 그리고는 마치 우리가 그 주제를 이미 다루었으니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착각하지요.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습니다. 믿을 수 없어서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는 ‘관심이 없어서’ 믿지 않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성당을 다닌다고 다 예수님의 양이라는 생각은 큰 착각입니다. 성당을 다니는 종교적 활동을 충실히 하는 사람과 진정한 믿음에서 우러나오는 신앙의 활동을 충실하 하는 사람은 분명히 다른 양상을 보입니다. 종교적 충실도가 뛰어난 사람은 독선적이고 교만하고 이기적인 구원관을 지니고 있는 반면, 신앙적 충실도가 뛰어난 사람은 그 삶 자체에서 빛이 납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십자가, 그리고 부활에 대해서 들었지만 그것을 믿기까지는 아직 참으로 요원합니다.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 실천해야 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우리가 거기에 신경을 쓰기에는 세상에는 우리가 ‘믿을 만한’ 정보들이 너무나 넘쳐나는 판입니다.
그들이 들어도 관심이 없고 믿지 못하는 것은... 그들이 주님의 양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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