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가 들어왔다 나갔다, 물이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곳에서 이틀을 더 머물렀습니다. 나가려던 시청 구경은 점심 시간이라고 안되겠다고 해서 그냥 있다가 혼자서 동네 산책을 나갔습니다. 동네라고 해 봐야 위아래로 네 다섯 블록 정도 밖에는 되지 않는 작은 동네입니다. 사람들도 낮 시간에는 다 일하러 나가고 없어서 만날 수 있는 이들도 거의 없었고 그저 우물 퍼로 온 동네 아낙들 정도가 전부였습니다. 하지만 동물들을 참 많이 만났지요. 돼지, 닭과 병아리떼, 말, 온갖 새들…
그날 저녁에는 후배 신부님이 집전하는 미사에 참례했습니다. 미사 직전에 성당에 앉아 있는데 아이들이 조르르 몰려와 안겨듭니다. 그리고 미사 준비하는 청년들도 왔고 수녀님들도 오셨지요. 그래서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수녀님과 청년이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청년이 어떤 행사에 대해서 작년에도 했으니까 그렇게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그에 대해서 수녀님이 한 말씀 하셨습니다. 수녀님의 말씀을 대충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너희들은 곧잘 관례로 모든 것을 하려고 한다. 혼배를 하는 것도 아이가 3명이 되어야 하지 않느냐. 내가 여기 2년 넘게 살고 있는데 그런 관례에서 벗어난 경우는 딱 하나 밖에 보지 못했다.”
아무래도 작고 협소한 동네이다보니 자신들 안에 형성된 관례를 무척이나 소중히 여기는 모양입니다. 자신들만의 룰이 있고 그것을 깨는 것을 큰 위협으로 간주할테지요.
어제는 아주 조용한 하루였습니다. 일어나서 아침 먹고 쉬고, 점심 먹고 다시 쉬고 하는 일상이었지요. 사실 점심을 먹고 나서려고 했는데 후배 신부님이 좀 더 머물다 가길 바라는 마음이 느껴져서 머물기로 했습니다. 물론 제가 귀찮아서이기도 했구요. 하지만 하느님이 왜 저를 남겨두셨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두 신부님이 모두 저에게 고해성사를 보았거든요. 오지에서 일하시는 신부님들에게 하느님의 용서의 선물을 잔뜩 안겨줄 수 있었습니다. 맑아진 마음으로 더욱 기쁘게 일하실 수 있기를 기도해야겠지요.
어제 저녁에는 신부님 두 분이 공소 미사를 나가고 동네 청년 둘과 한 자리에 앉아서 식사를 했습니다. 아이들은 이런 저런 질문을 했지요. 아니나 다를까 저의 신앙교육에 대한 열의가 발동을 해서 아이들을 가르쳤습니다. 한국은 ‘발전’한 나라냐고 묻는 말에 이렇게 대답을 해 주었습니다.
“발전이라는 것은 단순히 외적 가치의 성장을 말하는 게 아니란다. 그에 상응하는 내면의 가치도 함께 성장을 해야 진정한 발전이라고 할 수 있어. 어떤 사람이 내적인 가치가 하나도 없이 돈만 진탕 벌어들인다면 그 돈을 제멋대로 쓸 뿐만 아니라 결국 자신과 타인의 삶을 망치게 되지. 오히려 적게 벌더라도 그 안에서 자신이 지닌 작은 것을 책임감 있게 사용하는 게 진정한 ‘발전’이라고 할 수 있어. 이곳 산 안또니오 로메리오에서는 자연과 더불어 사는 모습을 너희들 나름대로 발전시켜 놓은 셈이야. 그러니 단순히 돈이 많다는 것, 문명의 이기가 많다는 것을 발전이라고 착각하는 일은 없도록 해. 사람은 내면의 가치가 자라야 진정한 발전을 이루는 거란다.”
“얘들아, 너희들이 물질적인 것에 호기심을 갖고 신기한 것을 찾고 하는 것은 정상이야. 하지만 그만큼 내면적인 것도 잊지 말거라. 그리고 실제로 보다 중요한 것은 내면이라는 것도 잊지 말아. 돈을 많이 번다고 좋은 사람이 되는 게 아니란다. 누구는 돈 많은 나라에서 태어나서 모든 것을 누리고 살겠지만 그 안에서 자신의 성실성과 신의, 책임감으로 일해야 하는 것이고, 또 다른 누구는 그런 문명의 이기가 없는 곳에서 태어나지만 그 안에서 성실성과 신의, 책임감으로 일해야 하는 것이야. 그러니 오늘 너희들이 나에게 대접해 준 이 저녁식사는 참으로 소중한 것이란다. 그러한 내면의 가치를 읽는 너희들이 되었으면 좋겠어.”
직업병이지요. 하하하. 기회가 좋든 나쁘든 가르치고 또 가르치는 것이지요.
저녁이 되어서 후배 신부님이 소 간과 김치를 볶은 맛난 안주를 마련하셨고 맥주 한 캔을 곁들여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선교지의 여러가지 어려움을 들을 수 있었지요. 물론 저도 겪은 것이지만 후배 신부님의 입장에서 새롭게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힘든 것은 ‘언어’이지요. 언어의 장벽이라는 것은 자신의 성격이 아무리 외향적이고 좋다고 하더라도 어쩔 수 없이 부딪히게 되는 것입니다. 말이 안통하는데 한국에서 하던 아무리 쉬운 표현이라도 여기에서는 일단 한번은 막히는 기분이 들게 되지요. 그런 가로막힘 속에서 자신의 능력을 온전히 펼칠 수 없으니 심적으로 좌절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후배 신부님의 고충을 들어주는 사이 시골 공소 미사를 마친 선배 신부님이 들어왔고 모두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지요. 그렇게 밤은 깊어 마무리를 하고 서로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오늘은 수녀님들이 아침 식사를 마련해 주신다고 하네요. 이제 그것 먹고 힘내서 열심히 운전해서 제 본당으로 돌아가야겠지요. 저 없는 동안 별일은 없었을테지요.
그날 저녁에는 후배 신부님이 집전하는 미사에 참례했습니다. 미사 직전에 성당에 앉아 있는데 아이들이 조르르 몰려와 안겨듭니다. 그리고 미사 준비하는 청년들도 왔고 수녀님들도 오셨지요. 그래서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수녀님과 청년이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청년이 어떤 행사에 대해서 작년에도 했으니까 그렇게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그에 대해서 수녀님이 한 말씀 하셨습니다. 수녀님의 말씀을 대충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너희들은 곧잘 관례로 모든 것을 하려고 한다. 혼배를 하는 것도 아이가 3명이 되어야 하지 않느냐. 내가 여기 2년 넘게 살고 있는데 그런 관례에서 벗어난 경우는 딱 하나 밖에 보지 못했다.”
아무래도 작고 협소한 동네이다보니 자신들 안에 형성된 관례를 무척이나 소중히 여기는 모양입니다. 자신들만의 룰이 있고 그것을 깨는 것을 큰 위협으로 간주할테지요.
어제는 아주 조용한 하루였습니다. 일어나서 아침 먹고 쉬고, 점심 먹고 다시 쉬고 하는 일상이었지요. 사실 점심을 먹고 나서려고 했는데 후배 신부님이 좀 더 머물다 가길 바라는 마음이 느껴져서 머물기로 했습니다. 물론 제가 귀찮아서이기도 했구요. 하지만 하느님이 왜 저를 남겨두셨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두 신부님이 모두 저에게 고해성사를 보았거든요. 오지에서 일하시는 신부님들에게 하느님의 용서의 선물을 잔뜩 안겨줄 수 있었습니다. 맑아진 마음으로 더욱 기쁘게 일하실 수 있기를 기도해야겠지요.
어제 저녁에는 신부님 두 분이 공소 미사를 나가고 동네 청년 둘과 한 자리에 앉아서 식사를 했습니다. 아이들은 이런 저런 질문을 했지요. 아니나 다를까 저의 신앙교육에 대한 열의가 발동을 해서 아이들을 가르쳤습니다. 한국은 ‘발전’한 나라냐고 묻는 말에 이렇게 대답을 해 주었습니다.
“발전이라는 것은 단순히 외적 가치의 성장을 말하는 게 아니란다. 그에 상응하는 내면의 가치도 함께 성장을 해야 진정한 발전이라고 할 수 있어. 어떤 사람이 내적인 가치가 하나도 없이 돈만 진탕 벌어들인다면 그 돈을 제멋대로 쓸 뿐만 아니라 결국 자신과 타인의 삶을 망치게 되지. 오히려 적게 벌더라도 그 안에서 자신이 지닌 작은 것을 책임감 있게 사용하는 게 진정한 ‘발전’이라고 할 수 있어. 이곳 산 안또니오 로메리오에서는 자연과 더불어 사는 모습을 너희들 나름대로 발전시켜 놓은 셈이야. 그러니 단순히 돈이 많다는 것, 문명의 이기가 많다는 것을 발전이라고 착각하는 일은 없도록 해. 사람은 내면의 가치가 자라야 진정한 발전을 이루는 거란다.”
“얘들아, 너희들이 물질적인 것에 호기심을 갖고 신기한 것을 찾고 하는 것은 정상이야. 하지만 그만큼 내면적인 것도 잊지 말거라. 그리고 실제로 보다 중요한 것은 내면이라는 것도 잊지 말아. 돈을 많이 번다고 좋은 사람이 되는 게 아니란다. 누구는 돈 많은 나라에서 태어나서 모든 것을 누리고 살겠지만 그 안에서 자신의 성실성과 신의, 책임감으로 일해야 하는 것이고, 또 다른 누구는 그런 문명의 이기가 없는 곳에서 태어나지만 그 안에서 성실성과 신의, 책임감으로 일해야 하는 것이야. 그러니 오늘 너희들이 나에게 대접해 준 이 저녁식사는 참으로 소중한 것이란다. 그러한 내면의 가치를 읽는 너희들이 되었으면 좋겠어.”
직업병이지요. 하하하. 기회가 좋든 나쁘든 가르치고 또 가르치는 것이지요.
저녁이 되어서 후배 신부님이 소 간과 김치를 볶은 맛난 안주를 마련하셨고 맥주 한 캔을 곁들여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선교지의 여러가지 어려움을 들을 수 있었지요. 물론 저도 겪은 것이지만 후배 신부님의 입장에서 새롭게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힘든 것은 ‘언어’이지요. 언어의 장벽이라는 것은 자신의 성격이 아무리 외향적이고 좋다고 하더라도 어쩔 수 없이 부딪히게 되는 것입니다. 말이 안통하는데 한국에서 하던 아무리 쉬운 표현이라도 여기에서는 일단 한번은 막히는 기분이 들게 되지요. 그런 가로막힘 속에서 자신의 능력을 온전히 펼칠 수 없으니 심적으로 좌절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후배 신부님의 고충을 들어주는 사이 시골 공소 미사를 마친 선배 신부님이 들어왔고 모두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지요. 그렇게 밤은 깊어 마무리를 하고 서로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오늘은 수녀님들이 아침 식사를 마련해 주신다고 하네요. 이제 그것 먹고 힘내서 열심히 운전해서 제 본당으로 돌아가야겠지요. 저 없는 동안 별일은 없었을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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