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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계명들

아, 네가 내 계명들에 주의를 기울였다면, 너의 평화가 강물처럼, 너의 의로움이 바다 물결처럼 넘실거렸을 것을. 네 후손들이 모래처럼, 네 몸의 소생들이 모래알처럼 많았을 것을. 그들의 이름이 내 앞에서 끊어지지도 없어지지도 않았을 것을. (이사 48,18-19)

하느님의 계명에 대해서 엉뚱하게 생각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물론 하느님은 과거 십계명이라는 형태로 우리가 준수해야 할 계명을 주셨습니다. 하지만 모든 계명에는 그 본의가 내재되어 있지요.

십계명의 내적 계명의 근본은,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입니다. 거기에서 벗어나는 계명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한 분이신 하느님을 섬기는 것도, 그분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는 것도, 주일을 거룩히 지내는 것도 모두 하느님을 향한 우리의 뜨거운 사랑을 위한 계명이며, 나아가 나머지 모든 계명들은 이웃들을 진정으로 사랑하기 위해서 필요한 계명들입니다. 그 밖의 계명은 존재하지 않지요.

하지만 오늘날에 와서 마치 세상이 복잡해지니 여러가지 복잡 다단한 계명들이 필요한 듯이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마치 인터넷이 존재하지 않을 때에는 그에 관해서 관련 법률이 필요없지만 인터넷이 생기고 나서는 그에 관한 법률이 생겨나고 그것을 어기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식이지요.

하지만 근본이 바뀐 게 아닙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두 가지 근본 핵심에 접근할 때에 우리는 모든 계명을 완수하는 셈이 됩니다. 그것이 예수님이 손을 씻지 않고 밥을 먹은 이유이며, 안식일에도 일을 한 이유가 되는 것이지요.

우리는 곧잘 법에 매달립니다. 이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저건 어떻게 해야 하나요? 하고 물어대기 일쑤이지요. 답은 간단합니다. “하느님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면서 모든 걸 하세요. 그럼 됩니다.”

우리가 근본에 충실할 때에 우리는 영원에 맞닿은 이들이 됩니다. 그러면 위의 성경 구절에서 약속된 것들이 우리를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하느님이 선물한 평화가 우리를 통해서 퍼져 나가고, 하느님의 의로움이 우리를 통해서 널리 전해집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분의 영광에 힘입어 우리의 영적 자녀들이 수도없이 불어나게 될 것입니다.

마더 데레사를 기억하는 이들을 떠올려 보십시오. 비오 신부님을 사랑하는 이들을 떠올려 보십시오. 하느님에 의해서 충만해지는 이들이 세상에 남기는 영향력을 깨달을 수 있다면 위의 성경구절이 의미하는 바를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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