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멀리 시골 본당에서 성탄을 마치고 쉬러 온 후배 신부님과 아침 일찍 세차를 맡기러 갔습니다. 차를 맡기고 돌아오면서 후배 신부님이 이런 저런 선교지의 어려움들을 이야기 해주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 결국 사람들은 자기 하고 싶은 데로 하게 마련이야. 그런 가운데에도 하느님은 당신의 뜻을 이루시지. 심지어는 악한 이들을 통해서마저도 하느님은 당신의 뜻을 이루신다니까. 그러니 사람들이 어떤 모습을 보이건, 무슨 일을 하건 결국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질 뿐이야. 문제는, 과연 우리가 그 하느님의 뜻을 돕는 쪽에 속하느냐, 아니면 반대로 하느님에게 맞서는 쪽에 속하느냐 하는 것이겠지.
그렇네요. 일리 있네요. 형.
그렇습니다. 결국은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지요. 그분의 오묘한 섭리는 자신의 때를 기다려 반드시 이루어지고야 맙니다. 우리는 마치 세상에 우리만 존재하는 듯이 살아가지만 실제로는 하느님의 거대한 품 속의 자녀들이지요. 물론 우리가 뜻을 함께 할 때 말입니다. 반대로 우리가 하느님에게 맞서기 시작한다면 마찬가지로 하느님은 우리를 통해서 필요한 일을 하시겠지만, 결국 우리가 하느님의 품에 안기지는 못하는 셈입니다.
모두 저마다 자기 하고 싶은 것을 하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누구 지각있는 이가 있어 하느님의 뜻을 찾게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 결국 사람들은 자기 하고 싶은 데로 하게 마련이야. 그런 가운데에도 하느님은 당신의 뜻을 이루시지. 심지어는 악한 이들을 통해서마저도 하느님은 당신의 뜻을 이루신다니까. 그러니 사람들이 어떤 모습을 보이건, 무슨 일을 하건 결국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질 뿐이야. 문제는, 과연 우리가 그 하느님의 뜻을 돕는 쪽에 속하느냐, 아니면 반대로 하느님에게 맞서는 쪽에 속하느냐 하는 것이겠지.
그렇네요. 일리 있네요. 형.
그렇습니다. 결국은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지요. 그분의 오묘한 섭리는 자신의 때를 기다려 반드시 이루어지고야 맙니다. 우리는 마치 세상에 우리만 존재하는 듯이 살아가지만 실제로는 하느님의 거대한 품 속의 자녀들이지요. 물론 우리가 뜻을 함께 할 때 말입니다. 반대로 우리가 하느님에게 맞서기 시작한다면 마찬가지로 하느님은 우리를 통해서 필요한 일을 하시겠지만, 결국 우리가 하느님의 품에 안기지는 못하는 셈입니다.
모두 저마다 자기 하고 싶은 것을 하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누구 지각있는 이가 있어 하느님의 뜻을 찾게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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