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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안또니오 로메리오 여행기

어제 아침 일찍 나서서 시내에 들러 볼 일을 보고, 오후에 시내에서 출발을 했습니다. 저녁 7시 무렵에 도착을 했습니다. 전기가 없어서 캄캄한 와중에 후배 신부님이 대문을 열기 위해서 쫓아나오더군요. 들어가서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컴컴한 방에 앉아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후배 신부님 생일이 얼마 전이라 교리교사들이 저녁 식사를 초대했다고 저도 함께 가자고 하더군요. 선배 신부님에게 맛있는 걸 준비해 놓으라고 해서 고기를 구울 준비를 해 놓았는데 그래도 교리교사들의 정성을 무시할 수 없는지라 모두 함께 식사 자리에 갔습니다. 축하곡을 모두 함께 불러주고는 식사를 시작했습니다. 장작에 구운 닭고기와 샐러드, 그리고 치즈에 섞인 스파게티가 있었습니다. 배가 고파서 정말 맛있게 먹었습니다. 그리고는 돌아와 다시 선배 신부님이 준비한 고기를 불판에 구워 먹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준비해 간 포도주와 함께 말이지요. 참으로 유쾌한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5시간을 운전해 온 몸이 더는 버텨 주지 못할 것 같아서 일찌감치 자리를 정리하고 잠자리에 들어야 했습니다.

새벽 1시가 조금 넘을 무렵… 갑자기 불이 환하게 들어오더군요. 그 바람애 깼습니다. 정전이 끝난 것이지요. 일어난 김에 글 하나 적고 다시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아침이 되어 컴퓨터에 전원을 연결하려는데 다시 전기가 나가 버렸습니다. 최근 들어서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전신주가 쓰러진 것이 이유일 수 있다고 하더군요. 선배 신부님이 준비한 미역국을 맛나게 먹고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가 다시 방에 돌아와 잠이 들었습니다. 제가 특별히 도울 수 있는 일이나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니 방해나 되지 않으려면 조용히 방에서 자는 수 밖에요. 모기가 한 마리 귀찮게 하긴 했지만 밤 사이 잠을 설친 덕분에 잘 잤습니다. 동네에서 들리는 소리라고는 새소리와 곤충소리, 그리고 가끔씩 지나가는 오토바이 소리, 그리고 성탄이 다가오면서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폭죽 소리가 전부입니다.

느지막히 일어나 다시 점심을 먹었습니다. 전기가 없어서 밥솥이 안되니 후배 신부님이 냄비에 밥을 했고, 반찬은 3분 요리 일색이었습니다. 3분 짜장과 3분 육개장을 먹었지요. 그리고 다시 방에 돌아와서 쉬는 중입니다. 잠시 후에는 후배 신부님과 함께 이 동네 시청 구경을 가게 될 것 같습니다.

덥네요. 아침 저녁으로는 그래도 선선한데 낮으로는 덥습니다. 방에만 들어오면 셔츠고 바지고 훌훌 벗어던져 버리고 맙니다. 원래도 선풍기는 없고 전기가 없으니 있어도 소용없지요. 전기가 없어 물도 공급이 원활하지 않습니다. 후배 신부님의 표현 대로 ‘청송 약수’가 졸졸 나오는 수준으로 물이 나오지요. 그 물에 세수하고 몸을 적시고 더위를 달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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