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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

선물이라는 것은 누군가가 노력을 해서 벌어들이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버는 것은 수당이라고 하지 선물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선물은 거저 주는 것입니다. 하지만 선물을 주는 주체와 수용자에 따라서 선물의 의미는 다양해집니다.

하느님이 주는 선물은 모두 공짜입니다. 하느님은 무엇보다도 우리에게 ‘생’을 선물하셨습니다. 그리고 매 순간 순간에 다가오는 것들을 모두 선물하셨지요. 우리는 자연을 만들지 않았고, 우리는 하늘의 해와 달과 별들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은 주어진 선물이지요. 하느님이 주는 선물은 우리가 기쁘고 행복하기 위함입니다. 사랑하는 자녀가 고통스러워하기를 바라면서 선물을 주는 부모님은 없기 때문입니다.

반면, 악마도 선물을 줍니다. 하지만 악마의 선물은 그 의도가 뚜렷합니다. 악마는 우리가 불행해지기를 바라는 것이 궁극 목적입니다. 하지만 그 궁극목적을 알아차려버리면 그 누구도 그 선물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악마는 자신의 의도를 철저히 감추어 버립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스스로 원할 때까지 덫을 놓고 기다립니다. 악마는 절대로 우리에게 강요하지 않습니다. 악마는 교묘하고 음험하게 우리 스스로 그 덫을 덥석 물어 버리도록 음모를 꾸미지요.

받는 사람도 문제입니다. 아무리 좋은 선물을 주어도 그것을 선물로 인지하지 못하면 의미가 없는 셈입니다. 예를 들어 선물을 준비하고 미사를 거행하는 것은 바로 미사의 참된 의미를 깨달아 하느님께로 다가가기 위한 것이 목적이지 물질적 선물만을 즐기라는 것이 주된 목적이 아닌 것이지요. 하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은 ‘미사’의 본 의미는 무시하고 선물만 받아 가기 일쑤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악마의 선물, 정확하게 말하자면 악마의 유혹거리에 더욱 쉽게 넘어갑니다. 악마의 선물은 눈에 보이고, 즉각적이고, 우리의 오감과 관련되어 있어서 참기 힘든 유혹이 되는 것이지요.

하느님은 ‘늘’ 우리에게 선물을 주십니다. 그 선물을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은 ‘늘’ 감사에 넘치게 되지요.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기뻐할 줄’도 알게 됩니다. 이를 역으로 생각해보면, 늘 기뻐할 줄 아는 사람, 어떤 상황에서도 기쁨의 요소를 찾아내는 사람은 하느님의 선물을 늘 받는 사람이 되지요.

다른 한 편, 악마의 선물을 기다리는 사람은 늘 욕구 불만에 시달리게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욕구라는 것은 절제 없이 무언가를 먹이면 먹일수록 더욱 더 커져 버리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절제와 동반하지 않는 욕구는 우리를 기쁘게 하기는 커녕 도리어 불행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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