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에 오존층만 없어도 태양열이 그대로 내리쬐어 인류는 얼마 지나지 않아 타죽어 멸망하고 말 것입니다. 우리가 통상적으로 받는 상존하는 하느님의 보호가 있습니다.
하느님은 인간을 악에서 지켜주십니다. 악이 제멋대로 활동하지 못하게 막아 주시지요. 그런 ‘기본적인’ 보호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인류는 이미 수도없이 악의 유혹에 넘어졌을 것입니다.
그렇게 보호하실 것 같으면 아예 처음부터 하느님만 향하게 방향 설정을 해 두지 어중간하게 보호를 하시고 결국 우리가 죄를 짓게 놓아 두시는 건, 우리를 가지고 노시는 게 아니냐고 대들 사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건 모르고 하는 소리입니다. 하느님이 그렇게 하는 순간 우리는 더이상 ‘인간’이 아니게 됩니다.
하느님은 인간에게 선과 악이 공평하게 작용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선택’하게 하시지요. 하느님은 이 선택의 여지를 남겨두시는 것입니다. 그 누구도 자신이 죄를 짓도록 ‘강요’ 받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자신의 의지가 하나도 개입되지 않은 강요된 죄는 죄가 아닙니다. 만일 누군가가 우리의 머릿속을 파고들어 우리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우리의 몸을 움직여 누군가를 살해한다면 우리는 그 죄에 대한 책임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인간에게는 ‘선택’이 열려 있습니다. 이 땅에서 숨쉬는 최후의 순간까지도 그 선택은 열려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스스로를 길들여 가기 시작하지요. 선과 악 사이에서 하나의 방향으로 스스로를 조금씩 길들여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한가지 알아야 할 것은 우리가 우리의 악으로 오존층을 파괴하듯이,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하느님의 은총을 우리의 악으로 파괴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은총을 부수어 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면 악은 자유로이 우리의 영혼을 넘나들면서 자신들이 원하는 행위를 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인간은 극악무도함을 실행하게 되는 것이지요.
이는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사태입니다. 그리고 이에 대해서 전혀 무지한 사람들은 어찌 인간이 그럴 수 있나를 개탄하지요. 하지만 여기서도 우리느느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런 극악 무도함의 시작점에는 한 인간의 선택이 존재했다는 것입니다.
아주 지극히 사소한 죄악이라도 위험한 이유는 그 안에는 우리의 의지가 개입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선과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서 우리의 의지를 더욱 사용해야 합니다. 죄를 짓기 위해서 의지를 사용하는 사람은 그 죄가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자신에게 유지되고 있는 하느님의 보호막을 제거해 버리고 맙니다. 인간이 벼랑을 뛰어내릴 수는 없지만 한 계단씩 내려가면 언젠가는 벼랑의 바닥에 닿을 수 있습니다. 인간의 죄도 그러하니, 자신의 선택으로 사소한 악을 저지르는 사람은 언젠가는 자신이 전혀 생각지 못한 극단의 선택을 하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은 인간을 악에서 지켜주십니다. 악이 제멋대로 활동하지 못하게 막아 주시지요. 그런 ‘기본적인’ 보호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인류는 이미 수도없이 악의 유혹에 넘어졌을 것입니다.
그렇게 보호하실 것 같으면 아예 처음부터 하느님만 향하게 방향 설정을 해 두지 어중간하게 보호를 하시고 결국 우리가 죄를 짓게 놓아 두시는 건, 우리를 가지고 노시는 게 아니냐고 대들 사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건 모르고 하는 소리입니다. 하느님이 그렇게 하는 순간 우리는 더이상 ‘인간’이 아니게 됩니다.
하느님은 인간에게 선과 악이 공평하게 작용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선택’하게 하시지요. 하느님은 이 선택의 여지를 남겨두시는 것입니다. 그 누구도 자신이 죄를 짓도록 ‘강요’ 받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자신의 의지가 하나도 개입되지 않은 강요된 죄는 죄가 아닙니다. 만일 누군가가 우리의 머릿속을 파고들어 우리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우리의 몸을 움직여 누군가를 살해한다면 우리는 그 죄에 대한 책임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인간에게는 ‘선택’이 열려 있습니다. 이 땅에서 숨쉬는 최후의 순간까지도 그 선택은 열려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스스로를 길들여 가기 시작하지요. 선과 악 사이에서 하나의 방향으로 스스로를 조금씩 길들여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한가지 알아야 할 것은 우리가 우리의 악으로 오존층을 파괴하듯이,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하느님의 은총을 우리의 악으로 파괴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은총을 부수어 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면 악은 자유로이 우리의 영혼을 넘나들면서 자신들이 원하는 행위를 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인간은 극악무도함을 실행하게 되는 것이지요.
이는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사태입니다. 그리고 이에 대해서 전혀 무지한 사람들은 어찌 인간이 그럴 수 있나를 개탄하지요. 하지만 여기서도 우리느느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런 극악 무도함의 시작점에는 한 인간의 선택이 존재했다는 것입니다.
아주 지극히 사소한 죄악이라도 위험한 이유는 그 안에는 우리의 의지가 개입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선과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서 우리의 의지를 더욱 사용해야 합니다. 죄를 짓기 위해서 의지를 사용하는 사람은 그 죄가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자신에게 유지되고 있는 하느님의 보호막을 제거해 버리고 맙니다. 인간이 벼랑을 뛰어내릴 수는 없지만 한 계단씩 내려가면 언젠가는 벼랑의 바닥에 닿을 수 있습니다. 인간의 죄도 그러하니, 자신의 선택으로 사소한 악을 저지르는 사람은 언젠가는 자신이 전혀 생각지 못한 극단의 선택을 하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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