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권한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신학교 학장은 신학교 안에서 권위를 지닐 것입니다. 신학생들의 다음 학기를 좌지우지 할 수 있을테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억지를 부릴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단순히 자신의 맘에 들지 않는다고 누군가를 잘라 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결국 그의 권한은 하늘에서 부여한 것입니다. 하늘의 뜻에 합당하게 일하지 않으면 지금 가진 권한을 행사하기 힘든 것이지요.
다른 모든 주요 직분들도 비슷합니다. 저마다의 한계 안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지요. (물론 오늘날에는 세상의 권위들이 민중의 귀를 막고 제 하고 싶은 대로 하는 듯한 모습이 드러나기에 안타깝긴 합니다.)
예수님의 권한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요? 우리는 모두 알고 있습니다. 배웠기 때문이지요. 그분의 권한은 하느님에게서 나옵니다. 하지만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 즉 자기 나름대로는 권력을 지닌 이들은 그분의 권위의 출처를 직감하면서도 그 대답을 하지 못합니다. 자신들이 지니고 있는 권한의 최종 출처가 어디인지 알기에 그렇게 대답하는 순간 그분에게 복종해야 하기 때문이지요. 그들은 비겁하고 지극히 세속적이며 이기적인 존재들에 불과합니다.
과연 이 권한에 관련해서 우리의 일상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우리는 주변에서 나름 권위를 지니고 말하는 이들을 마주합니다. 하지만 제각각의 권위라 그 분야에서는 힘을 지니지만 다른 분야에서는 전혀 힘을 지니지 못합니다. 예컨대 바이올린에 최고의 권위를 가진 이라도 미용실에 가면 사장님이 하라는 대로 고분고분 따라야 합니다. 바이올린은 잘 알아도 머리카락을 다듬는 법은 하나도 모르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때로 ‘삶의 길’에 대해서 권위를 지닌 이들을 마주하게 됩니다.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합당한지에 대해서 말하는 이들이지요. 하지만 우리는 직감합니다. 이 사람이 이런 저런 좋다는 말들을 조합해서 하는 말인지, 아니면 그의 영이 드높은 존재의 감화를 받아서 말하는지 말이지요. 하지만 우리는 의심하고 싶어하고 그 권위를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무척이나 자존심 상하는 일이기 때문이지요.
우리라고 예수님 시대의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입니다. 첫영성체를 하는 아이가 집에 와서 ‘아빠, 우리 저녁에 함께 기도해요.’라고 하면 그 순수한 영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참된 권위를 일단은 무시하고 싶은 것이 세속적인 권위를 지닌 마음입니다. 아버지로서의 자존심이 어린 꼬마의 진심어린 건의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지요.
과연 우리 주변에서 우리에게 이런 저런 조언을 하는 이들의 권한은 도대체 어디에서 비롯하는 것일까요? 때로는 스스로 조용히 자문해 볼 필요도 있을 것 같습니다.
다른 모든 주요 직분들도 비슷합니다. 저마다의 한계 안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지요. (물론 오늘날에는 세상의 권위들이 민중의 귀를 막고 제 하고 싶은 대로 하는 듯한 모습이 드러나기에 안타깝긴 합니다.)
예수님의 권한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요? 우리는 모두 알고 있습니다. 배웠기 때문이지요. 그분의 권한은 하느님에게서 나옵니다. 하지만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 즉 자기 나름대로는 권력을 지닌 이들은 그분의 권위의 출처를 직감하면서도 그 대답을 하지 못합니다. 자신들이 지니고 있는 권한의 최종 출처가 어디인지 알기에 그렇게 대답하는 순간 그분에게 복종해야 하기 때문이지요. 그들은 비겁하고 지극히 세속적이며 이기적인 존재들에 불과합니다.
과연 이 권한에 관련해서 우리의 일상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우리는 주변에서 나름 권위를 지니고 말하는 이들을 마주합니다. 하지만 제각각의 권위라 그 분야에서는 힘을 지니지만 다른 분야에서는 전혀 힘을 지니지 못합니다. 예컨대 바이올린에 최고의 권위를 가진 이라도 미용실에 가면 사장님이 하라는 대로 고분고분 따라야 합니다. 바이올린은 잘 알아도 머리카락을 다듬는 법은 하나도 모르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때로 ‘삶의 길’에 대해서 권위를 지닌 이들을 마주하게 됩니다.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합당한지에 대해서 말하는 이들이지요. 하지만 우리는 직감합니다. 이 사람이 이런 저런 좋다는 말들을 조합해서 하는 말인지, 아니면 그의 영이 드높은 존재의 감화를 받아서 말하는지 말이지요. 하지만 우리는 의심하고 싶어하고 그 권위를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무척이나 자존심 상하는 일이기 때문이지요.
우리라고 예수님 시대의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입니다. 첫영성체를 하는 아이가 집에 와서 ‘아빠, 우리 저녁에 함께 기도해요.’라고 하면 그 순수한 영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참된 권위를 일단은 무시하고 싶은 것이 세속적인 권위를 지닌 마음입니다. 아버지로서의 자존심이 어린 꼬마의 진심어린 건의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지요.
과연 우리 주변에서 우리에게 이런 저런 조언을 하는 이들의 권한은 도대체 어디에서 비롯하는 것일까요? 때로는 스스로 조용히 자문해 볼 필요도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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