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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을 쓰는 자들

폭력을 쓰는 자들이 하늘 나라를 빼앗으려고 한다.

하늘 나라와 폭력은 전혀 다른 두 가지입니다. 하늘 나라에는 당연히 폭력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폭력이라는 것은 힘 있는 자들이 힘 없는 자들에게 행하는 것이지요. 힘 있는 자들이 폭력을 당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어린 아이가 아빠를 두드려 팰 수 없으며, 가녀린 여인이 남자를 죽도록 패는 경우도 없습니다. 폭력은 언제나 힘있는 자들이 나약한 이들에게 휘두르는 것이지요.

하늘 나라를 빼앗으려는 폭력을 쓰는 자들은 사뭇 이해하기가 힘이 듭니다. 하지만 실제적인 예를 몇 가지 들어보면 조금은 이해에 접근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하늘 나라는 원칙적으로 하느님의 백성의 몫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백성은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을 말하지요. 하느님의 뜻을 알고 실천하는 이들을 말합니다. 그들에게 하늘 나라는 따논 당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 폭력을 쓰는 자들은 하늘 나라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원하는 자들을 말합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뜻을 알고도 실천하지 않으면서 자신이 가진 힘으로 하늘 나라를 ‘획득’할 수 있다고, 즉 ‘손에 넣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큰 착각이지요.

사랑하라 했지만 사랑하지 않으면서 하늘 나라는 가고 싶어하고, 용서하라 했지만 용서하지 않으면서 하늘 나라는 가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그들이 좋아하는 것은 ‘법’입니다. 요구되는 사항을 지키면 이루어져야 하는 마법과도 같은 ‘법’을 좋아하지요. 그래서 그들은 주일 미사를 빠지지 않고, 모든 성사 행위를 하지만 실제로는 하고 싶지 않고 울며 겨자 먹기로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이 우리를 질책할 법적인 사안들을 남겨두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지요.

고해성사를 진심으로 보는 게 아니라 억지로 판공때 끌려가듯이 보는 이들.
주일미사는 지루하다고 생각하면서 신자이니까 의무로 참례하는 이들.
자신의 옷을 사는 데에는 엄청난 돈을 쓰면서 교무금이나 봉헌금은 아까워하는 이들.
가난한 이들 곁에 가는 것이 죽는 것보다 싫으면서도 단체로 하는 활동에 자신의 위신이 걸려 있으니까 억지로 하는 이들.
실제로는 화해할 생각이 없으면서 성체는 모셔야 할 것 같으니까 어쩔 수 없이 싸운 것만 고백하는 이들.
금육은 지키고 더 비싼 회는 거리낌 없이 사먹는 이들.

이런 이들은 하늘 나라의 백성이 아니라 하늘 나라를 빼앗으려는 이들입니다. 하지만 과연 하늘 나라가 그들의 손에 들어가게 될까요? 하늘 나라는 거듭 말하지만 하느님의 뜻을 알고 실천하는 이들을 말합니다. 잊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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