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들이 게맛을 알아?’
한때 한창 유행하던 광고가 있었습니다. 진정한 게맛을 간직했다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광고였지요. 같은 표현으로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니들이 신앙을 알아?’
복음서를 읽어보면 예수님이 정말 이렇게 부르짖기라도 하는 것 같은 부분을 자주 접할 수 있습니다. 손을 씻지 않고 밥을 먹는다고 뭐라고 하는 부분에서 예수님은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을 하지만 솔직히 니들이 신앙에 대해서 뭘 안다고 주절거리느냐고 한탄을 할 수도 있는 부분이지요.
신앙은 뭘까요? 많은 이들은 법적 절차의 산물 정도로 생각합니다. 즉, 세례 교육을 준비해서 세례를 받고 주일 미사에 빠지지 않고, 교무금을 잘 내고, 판공을 잘 지키면 ‘신앙’이 있다고 생각하지요. 한국이나 여기나 별로 다를 게 없습니다.
그런 이들 앞에서 예수님은 신앙의 본질을 드러냅니다. 눈 먼 자를 보게하고, 귀먹은 이를 듣게 하고, 가난한 이들에게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지요. 그것이 신앙의 본질입니다. 누군가 다음과 같이 물을 수도 있겠습니다.
- 신부님, 그럼 신앙의 본질을 알면 위의 법적 절차는 필요없다는 말씀이신가요?
신앙의 본질을 알게 된 사람이 신앙을 더욱 굳건히 해 줄 수 있는 교회의 좋은 수단들을 마다할 리 없습니다. 모든 성사와 전례, 교회에서 가르치는 바들은 모두 우리의 영적 유익을 위한 것이 근본 목적입니다. 그러니 신앙에 눈을 뜬 사람은 저런 것들을 진실한 마음으로 찾기 시작하지요.
아직도 방황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신자들 중에 더욱 많습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곤란해 하는 이들이 많지요. 이거다 싶어 하면 아니라 하고, 저거다 싶어 하면 아니라 하니 도무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하고 안하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어디를 향해 가는가의 문제입니다. 서울을 가야 한다면 서울을 가는 기차를 타고 그 기차 안에서 밥을 먹든 화장실을 가든 서울에 가겠지만, 제주도로 가는 배를 타고서는 그 안에서 도착할 때까지 기도를 한다고 해도 그 배는 서울로 가지는 않는 셈입니다. 이 비유를 이해하지 못하면 우리는 전혀 엉뚱한 ‘행위’에 모든 열정을 쏟아부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 행위는 아무것도 보장하지 못합니다.
한때 한창 유행하던 광고가 있었습니다. 진정한 게맛을 간직했다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광고였지요. 같은 표현으로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니들이 신앙을 알아?’
복음서를 읽어보면 예수님이 정말 이렇게 부르짖기라도 하는 것 같은 부분을 자주 접할 수 있습니다. 손을 씻지 않고 밥을 먹는다고 뭐라고 하는 부분에서 예수님은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을 하지만 솔직히 니들이 신앙에 대해서 뭘 안다고 주절거리느냐고 한탄을 할 수도 있는 부분이지요.
신앙은 뭘까요? 많은 이들은 법적 절차의 산물 정도로 생각합니다. 즉, 세례 교육을 준비해서 세례를 받고 주일 미사에 빠지지 않고, 교무금을 잘 내고, 판공을 잘 지키면 ‘신앙’이 있다고 생각하지요. 한국이나 여기나 별로 다를 게 없습니다.
그런 이들 앞에서 예수님은 신앙의 본질을 드러냅니다. 눈 먼 자를 보게하고, 귀먹은 이를 듣게 하고, 가난한 이들에게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지요. 그것이 신앙의 본질입니다. 누군가 다음과 같이 물을 수도 있겠습니다.
- 신부님, 그럼 신앙의 본질을 알면 위의 법적 절차는 필요없다는 말씀이신가요?
신앙의 본질을 알게 된 사람이 신앙을 더욱 굳건히 해 줄 수 있는 교회의 좋은 수단들을 마다할 리 없습니다. 모든 성사와 전례, 교회에서 가르치는 바들은 모두 우리의 영적 유익을 위한 것이 근본 목적입니다. 그러니 신앙에 눈을 뜬 사람은 저런 것들을 진실한 마음으로 찾기 시작하지요.
아직도 방황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신자들 중에 더욱 많습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곤란해 하는 이들이 많지요. 이거다 싶어 하면 아니라 하고, 저거다 싶어 하면 아니라 하니 도무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하고 안하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어디를 향해 가는가의 문제입니다. 서울을 가야 한다면 서울을 가는 기차를 타고 그 기차 안에서 밥을 먹든 화장실을 가든 서울에 가겠지만, 제주도로 가는 배를 타고서는 그 안에서 도착할 때까지 기도를 한다고 해도 그 배는 서울로 가지는 않는 셈입니다. 이 비유를 이해하지 못하면 우리는 전혀 엉뚱한 ‘행위’에 모든 열정을 쏟아부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 행위는 아무것도 보장하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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